[존 엔디컷]김장과 한국 음식에 대한 따뜻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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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엔디컷]김장과 한국 음식에 대한 따뜻한 추억

[목요세평]존 엔디컷 우송대 총장

  • 승인 2012-12-05 15:11
  • 신문게재 2012-12-06 20면
  • 존 앤디컷 우송대 총장존 앤디컷 우송대 총장
▲ 존 엔디컷 우송대 총장
▲ 존 엔디컷 우송대 총장
이번에는 김장과 한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지난달 13일 제가 우송대학교에 온 뒤에 네 번째로 김장을 담그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송대학교의 세계화 교육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자주 먼 곳으로 출장을 다닙니다. 그래서 매년 김장 나누기 행사에 시간을 내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행히도 올해에는 출장과 출장사이에 잠시 시간이 나서 보람 있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김장 나누기 행사가 있었던 지난달 13일은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초겨울 날씨였습니다. 그래서인지 행사를 진행하면서 나누어 줄 김치가 쌓여가는 것을 모두가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행사에는 한현택 동구청장을 비롯하여 (사)대한노인회 동구지회, 대전시 동구 새마을부녀회에서 참여했고 우송대학교 사회봉사단(WUSSO)과 호텔외식조리대학의 재학생들이 참여해 지역의 독거노인과 소외계층에게 전달할 김치를 정성껏 담갔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오전 9시부터 일을 시작했으며 제가 도착했을 때 양념을 기다리는 엄청난 양의 절인 배추가 쌓여 있었습니다. 수 십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테이블 위에 양념을 쌓아놓고 마주 보고 양념 속을 넣느라 손길이 분주했습니다. 손은 바빴지만 서로 담소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김치 담그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격려 연설을 마치고 바로 조리복과 큰 앞치마, 긴 고무장갑 그리고 조리모를 착용하고 절여진 배추포기에 양념을 버무렸습니다.

손길이 서툴러서인지 보호안경을 썼지만 양념이 사정없이 튀었습니다. 그럼 옆 사람이 앞을 볼 수 있게 보호안경을 닦아주고 다시 버무리고, 그러면서 웃음이 터지곤 했습니다. 전해 들으니 한국 사람들은 초겨울에 집집마다 수십 포기의 김장을 하고 겨울을 준비하는데 이웃끼리 김장 하는 것을 돕는다죠? 김장을 끝내면 함께 모여 갓 담은 김치에 수육을 먹으면서 잔칫날처럼 지낸다고 하는데 한국 문화를 알고 싶은 외국인들에게 김장담그기에 한 번 동참해 볼 것을 적극 권하고 싶습니다. 웃고 떠들며 왁자지껄한 가운데 김장의 어려움이 즐거운 놀이처럼 변하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그날 저는 옆에 계셨던 아주머니들 덕분에 김치를 4인분 정도 먹었는데 저에게는 “기념할 만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김장담그기 행사를 마친 후 저는 솔브릿지 국제경영대학 학생들을 위해 특별강연을 해주신 분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당에서 처음 나온 음식이 김치였는데 순간, 제가 직접 담근 김치 한 포기를 가져올 걸 하는 아쉬운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허나 이내 제가 담근 김치는 어려운 분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나는데 작은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해졌습니다. 그날 저녁, 제 4회 한식 스타 셰프 양성과정의 수료식에 참석했습니다. 한식 세계화를 주도할 인재들이 6개월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수료증을 수여받았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 중 하나인 비지찌개에 대해 말했습니다.

저는 비지찌개가 한국에서 고급 요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집에서 간단하게 해먹는 서민 음식이라고 여기지요. 그러나 그날 저는 한식 세계화에 앞장설 요리사들에게 소외되어 있는 비지찌개를 주목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수료식이 있던 날은 바람이 부는 추운 저녁이었는데, 이런 날 외국 손님이나 여행자들에게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비지찌개 한 그릇이 그들의 영혼에 새겨 넣을 음식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말로 한식의 소중함을 강조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비지찌개를 파는 식당을 더 많이 개업하라고 설득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저 고급으로 대우받는 한식이 아니고 늘 먹고 있기 때문에 묻힐 수 있는 한국음식, 한국인의 정과 따뜻함이 배어 있는 한국의 음식들도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도록 일깨워 주고 싶었습니다. 외국인인 저의 입맛을 비지찌개가 단번에 사로잡은 것처럼 말이죠. 저는 추운 11월의 어느 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국의 대표음식인 김치를 담갔습니다. 저는 그날을 잊지 않을 겁니다. 단순히 김치 만들기가 아닌, 김치담그기를 통해 마주한 사람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와 정,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 저에게 한식은 그러한 의미로 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저와 함께 김장을 담그고 비지찌개에 대해 함께 생각한 사람들 역시 오랫동안 간직될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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