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이런 의사가 되게 하소서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윤식]이런 의사가 되게 하소서

[수요광장]김윤식 대전대 교수, 둔산한방병원 중풍신경센터 한방내과 전문의

  • 승인 2012-11-27 14:09
  • 신문게재 2012-11-28 21면
  • 김윤식 대전대 교수김윤식 대전대 교수
▲ 김윤식 대전대 교수, 둔산한방병원 중풍신경센터 한방내과 전문의
▲ 김윤식 대전대 교수, 둔산한방병원 중풍신경센터 한방내과 전문의
아침 일찍부터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환자가 내원했다. 평소에도 신경을 쓰거나 과로하면 두통이 심해진단다.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두통이 이제는 진통제로도 해결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심해지고 있고, 며칠 전부터는 하루 종일 지속되는 극심한 두통으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그분의 뒷목과 어깨를 진찰해 보니 돌을 만질 때 느껴지는 경직감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불편한데 그동안 어떻게 생활하셨어요? 고생 많으셨겠네요.” 이렇게 시작된 환자와의 대화는 한참 동안이나 지속된다. 치료를 마친 이후 환자분은 얼굴이 발그레 해지며 통증이 많이 사라졌다며 좋아하신다. 진료실을 나서는 뒷모습을 바라보니 한결 가벼워보인다. 행복감이 밀려온다.

환자들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이겠지만, 한번쯤은 서울의 빅3 병원(서울대병원, 아산병원, 삼성의료원) 혹은 빅5 병원을 가보고 싶어 한다. TV나 기타 대중매체를 통해 봐왔던 각 분야 최고의 권위자를 만나 진찰을 받고 싶어 한다. 그분들이라면 내가 앓고 있는 질병을 마치 도사인양 금방 알아맞히고, 그에 딱맞는 처방을 즉시 해줄 것 같은 신뢰가 어느샌가 우리들 안에 자리 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심지어 소원이니까 딱 한번만 그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보호자들에게 으름장을 놓는 환자들도 흔히 보게 된다.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는 지인도 그런 환자들 중의 한사람이다. 대전에서 다수의 교수들 처방도 받고 재야의 유명한 의사도 이미 만나본 상태다. 그분도 서울 모 병원에 근무하는 국내 최고의 권위자인 의사를 만나기를 소망했다. 보호자들은 인터넷과 아름아름 주변 지인들의 소개로 3개월을 기다려 의사의 진료를 받아볼 수 있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검사를 해야겠습니다. 일주일 후로 예약되었습니다.”

일주일후 다른 병원에서 시행되었던 MRI와 추가 검사를 받느라 하루 종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결과는 또다시 일주일 후에 나온단다.

일주일을 기다려 만나본 의사는 파킨슨이 맞다며 약물을 처방해 주셨다. “한 달 분입니다. 먹고 한 달 후에 오세요.”

기대와는 달리 증상의 변화가 없다. 한 달 후 다시 찾은 의사의 대답은 한결같다. 아니 너무 상투적이기까지 하다.

“한 달 분 더 드릴게요. 먹고 한 달 후에 다시 오세요.” 한 달을 기다려 만난 의사 앞에 무슨 뾰족한 대안이 없나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분은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근엄한 표정 뒤로 쌀쌀함이 느껴질 정도다. 지인은 그 이후로 한국 최고의 권위자인 그 의사를 다시 찾지 않았다며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그분의 모습에서 서글픔이 전해온다.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패밀리 레스토랑을 자주 가곤 한다. 안내하는 멋지고 예쁜 아르바이트생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이다. 그들의 복장은 주렁주렁 어린 시절 왕자나 공주들이 달고 있을 법한 엠블럼과 장식들로 한층 멋을 더했다. 주문을 받는 모습도 특이하다. 무릎 꿇기를 서슴지 않는다. “고객님 주문하시겠습니까?”로 시작되는 주문은 한참이 지나서야 끝이 난다.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아직 끝이 아닌가보다. “필요한 것이 더 없습니까?”

나온 음식이 잘 맞는지, 고기가 잘 익혀졌는지, 음료수가 부족하지 않는지, 추가로 부탁할 것이 더 있는지, 그들의 확인공세는 지겨울 정도로 지속된다. 그러나 그 지겨움은 행복함 자체다. 가족과 나눈 대화가 한참을 무르익어 갈 때 옆에서 들려오는 생일축하 노래 소리는 마치 내가 주인공인양 기분을 고조시켜준다. 음식 맛도 일품이거니와 그들의 기쁨의 모습을 내 마음에 훔쳐오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박차고 나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천하를 얻은 듯 기세가 등등하다.

“와우, 오늘은 왕자나 공주한테 대접받은 기분이네.” 아이들이 이미 중학생이 되었어도 그곳의 맛있는 음식과 유쾌한 기억은 생일이나 다른 기념일에 이곳을 방문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조그마한 일에 상처도, 감동도 많이 받는 우리네 모습이 아닐까한다. 아침부터 시작된 진료에 피곤이 몰려오지만 퇴근길 승용차 안에서 소박한 기도 하나를 올려본다.

“주여,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그런 의사가 되게 하소서. 이는 내 평생의 소원입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4.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