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붕어빵이 헤엄치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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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광장]붕어빵이 헤엄치는 거리

  • 승인 2012-11-22 14:34
  • 신문게재 2012-11-23 20면
  • 최일걸 작가최일걸 작가
가로수들이 여름 불볕으로 인화한 이파리들을 흩뿌리면 막대그래프처럼 앙상한 나목에 휘감긴 바람이 하향곡선을 그리며 빙점 아래로 떨어진다. 헐벗음이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겨울이 온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처럼 붕어빵들이 우리 곁으로 회귀한다. 손발이 시리고 옆구리가 허전할 무렵, 붕어빵이 전해주는 따스함은 각별하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거리에 사람들이 종종걸음을 풀어놓으면 붕어빵 장수는 포장마차를 끌고 거리에 모습을 드러낸다. 행인들의 발길이 빈번한 곳이면 붕어빵 장수의 바쁜 손놀림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붕어빵 장수는 그 간격을 촘촘히 좁혀 부쩍 욱 조여 오는 결빙의 힘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붕어빵 장수는 행복을 산란하기 위해 계란 노른자처럼 움츠린 하루를 거품기로 휘젓는다. 아무리 재료를 잘 배합해도 응어리진 날들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찌그러진 양푼에 제 삶을 고스란히 담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혹한의 거리에 붕어빵 장수로 내몰린 데는 나름대로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이고, 삶의 여러 대목이 붕어빵을 만드는 과정에 섞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화하던 인생의 구절들이 반죽되어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습습하고 서늘한 삶이 따끈따끈한 붕어빵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따지고 보면 붕어빵은 겨울 한 철 주전부리에 지나지 않지만, 사계절 중에 겨울은 누구나에게 가장 혹독한 계절이다. 공복과 한기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붕어빵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한랭전선에 꽁꽁 묶인 우리는 각자의 몫인 냉각곡선을 지닌 채 길고 긴 겨울밤의 고독을 견뎌내야 한다. 천원어치 혹은 이천 원어치 붕어빵은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붕어빵 한 봉지에는 나눔의 미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깊은 뜻을 알고 있으므로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야박하지 않다. 붕어빵은 덤으로 정이 붙어 따라오고, 따끈한 어묵국물은 언 몸을 살살 녹인다. 달짝지근한 팥 앙금을 맛보고 나면 저렴한 가격에 이만한 먹을거리도 없을 것 같다. 가슴마저 허전하고 삭막해지는 한겨울에 붕어빵은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의 영양 간식 노릇을 톡톡해 해 온 것이다.

기온이 급강하할수록 붕어빵은 불티나게 팔린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붕어빵을 집어 드는 손놀림이 바쁘다. 동장군의 기세에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이 잔뜩 움츠러들지만, 그럴수록 붕어빵은 거세게 지느러미를 털며 이 사람 저 사람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며 세상을 덥힌다. 사람들은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고 말하지만,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철에 붕어빵만큼 생의 기적을 일으키는 게 없을 것 같다. 강추위에 언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붕어빵을 파는 붕어빵 장수 역시 가슴이 뜨거운 사람일 것이다. 제 속에 뜨거움을 간직하지 않고 온종일 한파에 자신을 내맡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장기적인 경제 침체로 붕어빵 장수가 많이 늘어났다. 붕어빵 장사는 오랫동안 막막한 현실 앞에 좌절했던 사람들에게 든든한 생계 밑천이 되어 주었다. 붕어빵 장사로 붕어빵 같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며 봄을 기다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살아야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이 틀에 맞춰져 붕어빵으로 구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갓 구워진 붕어빵의 고소한 냄새는 그토록 살가운 것이다. 붕어빵엔 어렵게 살아온 우리들의 삶이 그대로 들어있다. 각박했던 시절 억척 같이 살아왔던 우리네 삶은 결코 붕어빵과 무관하지 않다. 타오르는 추억의 불길을 간직하고 있기에 붕어빵은 그 무엇보다도 따스하다.

오늘도 제 철을 만난 붕어빵들이 유유히 빙판길을….

최일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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