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이라고 해두고 싶군요. 저는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이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연쇄살인범이 뻔뻔스럽게 범행 행적을 기록한 자서전을 내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설정부터 시선을 붙든다. 용서를 구하는 이두석(박시후)을 향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게다가 비난을 받아 마땅한 '공공의 적'은 곱상한 외모에 반한 사람들에 의해 졸지에 스타가 된다.
죽도록 범인을 잡고 싶었던 최형구 형사(정재영)와 피해자 가족들은 그의 컴백과 세상의 반응에 다시 상처를 입는다. 최형구의 입에는 깊은 상처가 있다. 영화의 오프닝, 최형구는 범인을 쫓아, 관객의 눈을 한순간에 잡아끄는, 격렬한 추격전을 벌이지만 다잡았던 범인은 그의 입을 찢고는 달아나 버렸다. 기이한 팬덤 덕에 살인범이 엄청난 돈을 벌고 고급 호텔에서 경호원까지 두고 생활하며 스타가 되는 뒤틀린 세상은 웃음으로 버무려도 씁쓸하다. 영화 속 표현대로 “살인도 잘 생긴 놈이 해야 욕을 덜 먹는 세상”, 영화는 이런 빗나간 팬덤 문화, 언론, 여성차별, 위계질서 등 세상의 부조리를 바탕에 깐다.
빗나간 것은 그 뿐이 아니다. 법은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진실은 말하지 못한다. 최형구의 찢긴 입이 그런 상황을 상징한다. 보다 못한 피해자 가족들은 응징에 나서고, 유가족은 피해자에서 범법자가 되고 어떻게든 이두석을 잡아넣고 싶은 형사는 그를 구출해야 한다.
이런 바탕위에 방점을 찍는 것은 액션이다. 액션스쿨 출신 정병길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답게 '싱싱한' 액션이 화면을 수놓는다. 영화 초반의 추격신에서 카메라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시선을 유지하며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함을 그대로 전달한다. 3대의 승용차와 119구급차가 뒤엉켜 벌이는 화끈한 카체이싱은 명장면. 박시후가 목욕가운 하나만 걸친 채 차량 보닛에 매달려 몸싸움을 벌이는 이 액션신은 할리우드 액션 못지않다. 그리고 대담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튼실한 재료들을 가지고 빠른 템포로 긴박감 넘치게 몰아치는 데도 뭔가 미진한 느낌이다. 액션은 매혹적이지만 액션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한 때문이다. 이 불협화음이 이야기의 맥을 끊고 몰입도 방해한다. 미진한 부분을 순간, 확 끌어안는 것은 핏발 선 눈이다. 희생자의 엄마로 나오는 김영애의 핏발 선 눈은 피해자 가족이 지닌 분노의 깊이를 선명하게 전달하고, 영화 끝부분, 고통과 울부짖음을 짓누르는 정재영의 핏발 선 눈은 그간의 미진한 부분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정병길 감독은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거침없는 연출과 스토리텔링 솜씨로 주목할 만한 신인의 탄생을 알린다.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끌어내고 보듬을 줄 아는 감독이 어디 그리 흔한가.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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