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폴'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부활'이다. 극중에서 본드는 동료의 총에 맞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다. '스카이폴'의 또 한 명의 주인공이자 상관인 M과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너무 오래됐다”고 말한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현장 요원에게 '노쇠'는 곧 죽음. '늙은 개'라는 농담을 들을 정도로 퇴물 취급을 받는 신세지만 본드는 뛰고 달린다. 악당이 '취미가 뭐냐'고 묻자 본드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부활!”
'부활'은 제작자들에게도 간절한 소망이었을 거다. '본' 시리즈와 '미션 임파서블'에 밀려 '구닥다리'라는 평을 듣는 이 시리즈를 어떻게든 부활시켜 이어가고 싶을 터다. '카지노로얄' '퀀텀 오브 솔러스'로 리부트를 시도했지만 2% 부족했다. 그런 점에서 샘 멘데스 감독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멘데스는 '부활'의 의미를 옛 것에서 새로운 무엇을 찾는 것,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이해했다. 007시리즈의 역사와 전통을 재치 있게 자랑할 뿐 아니라, 이 시리즈가 왜 계속돼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해 갈지를 유려한 솜씨로 풀어낸다. 완성도도 역대 시리즈 가운데 베스트로 꼽힐 만큼 뛰어나다.
본드는 여전히 뛰어난 첩보요원이지만 '세월의 흐름'이란 적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체력과 사격테스트에서 불합격을 받는다. M은 “00번으로 시작하는 요원들을 계속 둘 필요가 있느냐”는 총리의 추궁을 받는다. 한물 간 이들 세대에게 새로 등장하는 신세대 천재과학자 Q와 머니페니가 활력을 불어넣는다.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의 조화다.
터키 이스탄불. MI6 요원의 신상 정보가 든 파일이 도난당하고 본드(대니얼 크레이그)는 도둑의 뒤를 쫓지만 놓치고 만다. 이후 각 테러단체에 잠입해 활동하고 있는 요원들이 살해당한다. 본드는 과거 MI6 요원이었던 실바(하비에르 바르뎀)의 MI6 파괴 공작을 막고 궁지에 몰린 상관 M(주디 덴치)도 구해야 한다.
멘데스는 장기인 캐릭터 사이의 갈등과 드라마에 솜씨를 발휘한다. M의 과거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다양한 갈등이 야기되고, 자신이 더 큰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도 M은 냉혹한 상사 이전에 어머니처럼 본드를 보듬는다. 그렇다고 액션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본 얼티메이텀'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탕헤르의 지붕 추격전은 발로 뛰는 것이 아니라 오토바이로 강화됐다. MI6본부 폭파, 카지노에서의 결투, 지하철 추격 장면 등 액션은 더 세졌고 화려해졌다. 다만 논스톱 액션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심심할 수 있겠다.
'스카이폴'이 흥미로운 지점은 007시리즈의 전통을 전시해놓고는 갖고 논다는 점이다. Q가 “아직도 볼펜 폭탄을 만드는 줄 아느냐”고 비꼬는가 하면, '007 골드핑거'의 본드카 '애스턴 마틴 DB5'가 옛 모습 그대로 등장해 팬들에게 진한 향수를 선물하기도 한다. 게다가 본드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디지털 악당을 물리친다. 전통과 진화의 어우러짐. 007시리즈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감독은 진정한 새 시리즈의 시작을 열어젖혔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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