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화]'노크 귀순'과 거짓말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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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노크 귀순'과 거짓말의 심리학

[중도시감]김의화 사회단체부 부장

  • 승인 2012-10-18 14:31
  • 신문게재 2012-10-19 21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 김의화 사회단체부 부장
▲ 김의화 사회단체부 부장
숙제를 제출하지 않은 미국과 일본 초등학생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두 학생 모두 집에서 숙제는 했지만 학교에 가져오지 않았다. 미국 학생은 “숙제는 했는데 가지고 오는 걸 잊어 버렸다”고 했고 일본 학생은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상심리학자가 일본학생에게 '숙제를 했는데도 안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거짓말이 아니냐'고 묻자 그 학생은 “선생님이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나라마다 문화적·기질적 차이와 가치와 전통이 버무려진 결과겠으나 단편적으로나마 실수와 진실을 구분하는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실수(책임 혹은 의무)를 진실보다 중시하는 일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사실 우리도 일반적으로 일본에 가깝지 않은가?) 시부야 쇼조의 거짓말 심리학에 나오는 이 실험은 목적하지는 않았으되, 어느 쪽이 더 교육적이고 인간적인가 하는 교훈도 주지만 거짓말의 심리를 엿보기 위한 것이다.

최근 북한군 병사의 '노크 귀순'으로 역대 최대인 5명의 별자리를 비롯해 14명의 군인이 중징계를 받았다. 귀순자의 살겠다는 몸부림이 여럿을 결딴내 버렸다.

'노크 귀순'이라는 용어는 일반인(독자/시청자)들이 보기에는 언론사들의 놀라운 표현력이겠지만 군부에게는 그만한 '굴욕'이 없을 것이다.

포털사이트에 검색어로 등극하고 친절한 설명까지 붙어 있으며 '귀순자들이 편하게 아예 초인종을 달아주라'는 빈정거림도 많다. 이번 사건에 대해 몇몇 군필 남성들에게 들은 얘기를 종합하면 대체로 두 갈래다. 하나는 '하필이면 그 부대로 귀순할 게 뭐냐?'와 '기습이었다면 남한 군인들은 다 죽었을 것!' 이라는 촌평들이다. 전자는 전형적인 책임회피형 해석이고 후자는 전통적인 남북한 적대적 관계를 근거로 한 안보불안 심리의 반영으로 보인다. 관심은 '책임회피형 해석'에 반드시 뒤따르는 거짓말의 심리에 대해서다.

이번 대규모 징계는 전방경계 소홀 책임과 함께 '거짓말 보고'에 대한 문책 성격이 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실 군 수뇌부는 지난 3일 귀순사실을 보고 받아 놓고도 “10일에야 파악했다”, 귀순 모습이 담겨 있지도 않았는데도 “폐쇄회로(CC)TV로 발견했다”는 등의 거짓말이 속속 들통이 났기 때문이다.

군은 경계작전 실패와 함께 '상황보고 체계상 부실'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보고체계의 부실은 거짓말로 책임회피하려 했다는 의미처럼 들린다.

사람들은 강한 불안을 느끼면 패닉상태에 빠지게 되고 방어기재에 의해 자신을 파국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현실에서 달아나려 한다. 다시 말해 현장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거짓말의 여러 가지 유형중 하나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이 더해진다.

명예와 자존심을 먹고 산다는 군으로서는 경계 소홀 자체가 스스로의 자존감에 큰 구멍이 뚫리게 하는 것이므로 받아들이기 싫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리플리 증후군'(패트리샤 스미스의 소설 '재능있는 리플리씨'에서 유래), '실제로 그렇게 될 때까지 그런 체하라'라는 속담을 따라서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는 심리들이 한 덩어리가 됐을 것이다.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는 거짓말은 제2의 천성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심리학 교수는 거짓말은 어떤 면에서 사회적 재능이라며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 애교 섞인 거짓말은 필요하다고 한다.

대리만족을 느끼기 위해, 다른 사람과 차별화하기 위해, 가학적인 충동으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힘과 우월감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을 속이기 위해 다른 사람이 거짓말을 하도록 부추기기도 한다. 거짓말이 위기를 모면해 줄 수도 있지만 탄로가 나서 모든 것을 잃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비록 결과적인 책임을 모면할 수 없었다 해도 귀순 당시 휴전선 철책경계를 소홀히 했다고 정직하게 보고했더라면, 스스로까지 파괴하는 거짓말의 대가는 치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직이 최상의 방책이라는 격언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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