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주]댁의 자녀는 어떻게 놀고 있습니까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백은주]댁의 자녀는 어떻게 놀고 있습니까

[수요광장]백은주 목원대 유아교육과 교수

  • 승인 2012-10-16 14:21
  • 신문게재 2012-10-17 21면
  • 백은주 목원대 유아교육과 교수백은주 목원대 유아교육과 교수
▲ 백은주 목원대 유아교육과 교수
▲ 백은주 목원대 유아교육과 교수
한창 단풍이 물들고 있다. 지난해 가을 어느 날 밤 산책길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진 콩 주머니에서 콩이 쏟아져 나오듯 까르르 하고 들리기에 눈을 돌려 보니, 가로등 불 빛 아래 유치원생부터 초등생까지로 보이는 올망졸망한 세 아이와 아빠가 가로수 아래에 있었다. 아빠가 나무를 살짝 흔들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아이들은 낙엽을 비 맞듯하며 깡충깡충 뛰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 그림같이 예쁜 분위기에 방해라도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 반대편 길로 건너가 그들을 지나쳐왔다. 한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때 본 그 아빠와 아이들의 '낙엽비 놀이'와 웃음소리가 선명하게 눈과 귀에 남아 있다.

어릴 적 두 살 위의 오빠와 겨울밤에 종종 하던 놀이가 있다. 솜이불을 방 중앙에 펴 두고 그것을 사각 링으로 하여 오빠와 내가 씨름을 하면 아버지께서 심판을 보셨다. 속내의 차림으로 마른 체격의 오빠와 내가 허리께를 잡고 흉내에 가까운 씨름을 하노라면 아버지는 나름 해설하듯 소리를 내시며 우리의 경기 흥을 돋우시곤 하셨다. 번번이 오빠의 승으로 끝났지만 이불 위에 퍼져 앉아서 숨을 할딱이면서도 깔깔거렸던 기억이 난다.

몇 해 전 20여명의 초등학생들을 인솔해 5박 6일의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일정기간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그 마무리로서 현장체험을 하는 취지의 여행이었다. 가기 전에 게임기, 만화책 등의 지참을 금한다고 하고 가정에도 협조를 구하였다. 그 이유는 이런 물품을 소지하면 오가는 길에 아이들이 각자 그것들을 손에 쥐고 몰입하면서 아이들 간의 소통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타야 할 비행기가 갈 때와 올 때 두 번 모두 연착이 되어 몇 시간씩 공항 대합실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통행이 드문 한 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아이들에게 어느 시간까지 그 자리에 머물러 기다려야 함을 알려주었다. 내심 아이들이 지겨워하며 몸을 틀고 불평하면 어쩌나 염려도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아무 놀잇감도 없는 그 곳에서 몇 시간씩 아주 잘 놀았다.

바닥카펫의 무늬를 이용하여 '하늘땅'놀이를 하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곰발바닥 소발바닥'놀이를 하는 무리, 유일하게 지참이 허용된 공깃돌을 가지고 카펫 위에 둥글게 모여 앉아 공기놀이를 하는 무리 등, 어느 한 아이도 혼자 떨어져 있지 않고 모두가 신나게 놀고 있었다.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기존에 하던 놀이에 새로운 규칙이나 아이디어를 더해가며 놀이형태가 진화되기까지 하였다. 또 흥분하여 소리가 커지면 아이들 스스로 주변 사람들이 놀라니까 소리를 좀 줄이자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인솔 교사였던 나조차도 이 아이들과의 여행을 내가 지금까지 한 여행 가운데 가장 즐겁고 인상 깊은 것으로 꼽는다.

내가 지켜본 아이들은 정말 잘 논다. 유형(有形)의 놀잇감을 손에 쥐어주지 않아도 잘 논다. 필요하면 주변의 모든 것을 놀잇감으로 활용하는 안목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놀이를 할 때의 아이들은 매우 적극적이며 자발적이고 즐거워한다. 따라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입한다. 그 놀이에 때론 부모가, 때론 또래나 손윗 아이들이 함께 한다. 그리고 이러한 놀이 가운데 아이들은 틀에 박힌 학습을 하는 과정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정서적 포만감은 물론이고 놀이 규칙과 순서 지키기, 기억 및 연상하기, 때론 민첩성과 순발력 등 인지·신체적 학습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된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놀 시간이 없다. 아니면 “지금부터 30분 줄 테니 충분히 놀아”하는 놀이 시간표 속에서 놀아야 한다. 아이들이 자발적이고도 신나게 놀기 위해서는 이미 프로그램이 짜여진 컴퓨터 게임을 30분간 하는 것과는 다르다. 게다가 평소 이런 놀이를 해 볼 기회가 없었던 아이는 처음에, “어떻게 놀아요? 뭐하고 놀아요?”라고 놀이형태를 가르쳐달라고 한다.

참 안타깝다. 아이가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은 감각기관을 손상당한 곤충과도 같다. 아마도 내가 지난 가을 밤 산책길에서 만난 그 아이들은 이 감각기관을 잘 계발하여서 세상을 주도적으로 탐색하며 신나게 살아갈 수 있는 아이들로 자라고 있을 것이라 여기며 마음 한 구석 위로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