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루퍼'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의 띠로 연결돼 시간이 나사처럼 휘어져(Loop. 루프)있다는 설정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er)를 붙여 만들어진 단어다. 영화 속 설정을 빌려오면 '시간암살자' 쯤이 될 듯하다. 2074년은 시간여행이 가능한 세상이다. 하지만 시간여행은 불법으로 규정되고 범죄 조직만 암암리에 사용한다. 조직은 처리해야 할 타깃을 과거로 보내고 루퍼를 이용해 완전범죄를 이룬다. 문제는 루퍼의 운명. 조직은 '계약 해지'된 루퍼를 과거의 루퍼에게 보내고 루퍼들은 미래의 자신을 죽여 '시한부 인생'을 사는 대가로 현재의 안락을 보장받는다. 2044년을 사는 루퍼 조(조셉 고든 레빗)에게 미래의 자신이 보내진다. 미래에서 온 조(브루스 윌리스)를 죽여야 현재의 내가 살 수 있다. 하지만 미래 도시를 장악한 레인메이커에게 아내를 잃은 조는 도착한 과거에서 레인메이커를 제거함으로써 미래를 바꾸려 한다.
과거로 가 미래를 바꾼다는 설정은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킨다. 과거의 나가 미래의 나와 싸우면서 미래의 나의 기억이 바뀌는 설정은 '백 투 더 퓨처'에 가 닿는다. '루퍼'는 이처럼 익숙한 시간여행 설정을 빌려와 효율적인 설명으로 활용하면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조립한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가 대립하는 이유는 결국 '지금'을 지키기 위해서일 뿐. 이 지점에서 영화는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의 본성에 관한 드라마가 된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낼 줄 아는, 영리한 감독이 빚어낸 똑똑한 SF 영화다. 브루스 윌리스와 함께 2인1역 연기를 소화한 조셉 고든 레빗은 브루스 윌리스의 말투며 연기 습관을 교묘하게 베껴내 외모에서 오는 괴리감을 좁힌다. 그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제법 근사하다.
안순택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