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놓고 벌이는 은밀한 거래
플레이보이 장동건?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김도진이 떠오를지 모른다. '밀당(밀고당기기)'의 고수, 능글맞은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위험한 관계'의 셰이판은 카리스마가 넘친다. 장동건은 '미모'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무르익은 연기로 옴므파탈의 매력을 한껏 뿜어낸다. 허진호 감독은 “(장동건이)이제까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재미있어 했다. 자신의 그런 모습에 호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호텔을 소유한 거부에다 외모까지 출중한 셰이판은 소문난 바람둥이. 그에게도 넘어오지 않는 여자가 있었으니 사교계의 여왕 모지웨이(장바이즈)다. 세상의 모든 이를 조종하고 싶어 하는 팜므파탈 모지웨이는 셰이판에게 셰이판이 정숙하기로 소문난 미망인 뚜펀위(장쯔이)의 마음을 훔쳐낸다면 자신의 몸을 허락하겠다는 내기를 제안한다.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동명 소설이 원작. 소설은 할리우드는 물론 동서양을 넘나들며 이미 다섯 차례나 영화화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재용 감독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만들었었다. 허진호 감독은 바람둥이와 정숙한 여인의 '밀당'을 다룬 기존 영화들과는 달리 셰이판과 모지웨이의 멜로 비중을 끌어올렸다. 허 감독의 연출 스타일도 달라졌다. 바람둥이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걸 장쯔이의 눈물 한 방울로 표현하는 것 같은 섬세한 연출은 여전하지만, '절제의 미학'이 돋보였던 이전 작품과는 달리 감정들이 세고 심리 묘사가 강렬하다. 흐름 전개도 빨라졌고 클로즈업이 자주 등장한다. 꼼꼼한 시대고증, 풍부한 색감도 눈길을 잡는다. 역시 허진호는 사랑 영화를 잘 만든다.
살인청부업자 우수사원의 퇴직 분투기
샐러리맨 소지섭? 왠지 좀 어색하다. 지친 표정으로 출근길에 오르고, 실적을 위해 때론 외근도 해야 하며, 내일 출근을 위해 와이셔츠를 다림질하는 모습은 회사원 같기도 하다. 소지섭은 “평범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지만 후줄근한 슈트를 입어도 간지(느낌, 분위기를 뜻하는 일본말)난다. '회사원'은 소지섭이 왜 '간지남' 소리를 듣는지 전시하는 영화다. 쭉 뻗은 팔다리가 만들어내는 액션도 폼 난다.
영업 2부 과장 지형도(소지섭). 그는 회사에서 10년 동안 인정을 받아온 회사원이다. 그런데 이 회사 수상하다. 간판은 금속제조업체인데 하는 일은 살인청부다. 그러니까 지형도는 살인청부업자고 실수 한 번 하지 않은 우수사원인 셈이다. 그는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알바생 훈(김동준)을 만나면서 회사 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훈의 어머니(이미연)을 만나고서는 평범한 삶을 갈망한다. 그때부터 지형도는 회사와 동료 모두의 표적이 된다.
지형도 역을 소화하기 위해 촬영 전부터 러시아 특수부대의 무술 '시스테마'를 연마했다는 소지섭은 시스테마뿐 아니라 칼, 총기 등 각종 도구를 이용한 액션까지 스타일리시하게 펼쳐낸다. 여기에 5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이미연, 명품 조연 곽도원, 스크린 신고식을 치르는 '제국의 아이들'의 김동준이 그의 뒤를 받친다.
가슴 속에 사직서 하나씩 품고 사는 이 땅의 직장인들의 이야기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떤 일이든 참고 삭이며 받아들이는 모습은 직장인의 초상을 잘 보여준다. 직장생활을 빗댄 농담과 우화가 눈에 띄지만, 그만큼 액션의 활력은 떨어진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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