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혁주 전국농민회충남도연맹 정책위원장 |
그야말로 국가적 재난상황이라 해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러한 때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겠는가? 철저한 피해조사와 신속한 복구, 피해 지역 전역에 대한 특별재해지역 선포, 피해보상단가 현실화, 피해농가의 각종 부담금 및 이자감면 등의 요구가 피해 현장으로부터 빗발치고 있다. 이와 같은 태풍피해 농민들의 요구는 절박한 생존의 요구로부터 나오는 매우 긴급하고도 절실한 문제이며 시급성을 요하고 있다. 오죽하면 자식같이 키워온 논을 갈아엎는 극단적인 투쟁에 나서고 있겠는가?
농림수산식품부의 초기 보도 자료를 보면 피해농민들에 대한 대책은 없고 피해지역과 규모를 축소하기에 급급하고 행여 농산물 가격이 오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태풍 피해지역 전역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하라는 농민들의 요구를 살펴보자. 특별재해지역 선포에 대한 요구는 태풍피해를 최소화하여 농민들의 고통을 덜기 위한 최소한의 국가적 재난 극복 의지를 밝히라는 것이다. 실의에 빠진 농민들의 복구 의지를 북돋우기 위한 우선적 조치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특별재해지역 선포를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하거나 피해농민들과 실랑이하는 것은 국가의 근본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관련법규를 살펴보더라도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특별재해지역으로 선정된다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별재해지역 선포의 법적 근거가 되는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르면 재해복구에 필요한 행정, 금융, 세제상의 각종 지원이 가능해져 우선 숨통을 틔우는 것은 가능하지만 농작물 피해에 대한 보상 규정이 없어 농민들의 소득감소에 따른 실질적 보상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농작물 피해에 대한 정확한 조사조차 제때 시행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어 새로운 대체입법에 대한 요구가 대단히 높다.
또한 현행 농작물재해보험은 가입대상이 한정적이고 자기부담금이 높아 농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어 전면적인 제도개선이 요구되는 현실이다. 아무리 대비한다 한들 자연재해 앞에 취약한 것은 농업의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때문에 자연재해로 인한 농업피해에 대하여 국가적 차원의 대비책과 피해보상 체계를 갖추는 것은 농업, 농민을 위한 국가 정책의 기본이다. 국가정책의 기본은 다름 아닌 법을 통해 제도화된다. 그래서 농민들은 자연재해가 닥칠 때마다 매번 제기되는 '농어업재해보상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농어업재해보상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재해보상법을 통해 재해로 인해 농민들의 실질소득감소분에 대한 직접지불과 영농재기를 위한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농지 및 시설에 대한 복구비를 지원해야 한다. 재난을 딛고 다시 일어나 재기해 농업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근본대책을 담은 재해보상법제정이야 말로 세계적 식량위기를 예고하는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출발점이다.
그리고 현행 농작물재해보험의 공공보험화를 위한 농작물재해보험 공단 설립을 통해 재해보상법을 보완해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걱정 가실 날 없는 300만 농민들의 주름 깊은 얼굴과 상처투성이 손으로 우리의 식량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농어업은 공공재 생산이며 따라서 공적자금이 지원돼야 한다. 농민들의 가슴에 숯덩이를 안기지 말고 희망을 갖도록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할 때다. 농어업재해보상법 제정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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