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선보이는 영화는…
왈가닥 공주, 마법에 걸린 엄마를 구하라
감독: 마크 앤드류스, 브렌다 채프먼. 목소리 출연: 켈리 맥도날드, 빌리 코놀리.
‘토이 스토리’ , ‘월-E’, ‘업’ 등을 만든 애니메이션의 명가 픽사의 열세 번째 작품. 처음으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메리다는 스코틀랜드의 왈가닥 공주님. 가장 큰 ‘적’은 조신하게 ‘공주수업’ 받다가 좋은 신랑 만나 시집가라는 엄마 엘리노어 왕비다. 엄마와 다투고 성을 뛰쳐나온 메리다는 숲의 마녀를 만나 소원을 빈다. “엄마가 내 이야기를 듣도록 바꿔주세요.” 메리다가 바꾸기를 원한 건 엄마의 마음이었지만, 마녀는 몸을 바꿔버린다. 엄마는 곰이 돼버린다.
사춘기 딸과 엄마의 갈등은 동서고금이 똑 같은 모양이다. 그런데 하필 ‘곰’이 되었을까. 곰이 된 왕비는 왕비로서의 품위와 야생의 습성 사이에서 어찌하나 갈등한다. 영화의 메시지를 숙성시키기 위한 설정이리라. ‘꿈과 소망을 찾고 있다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곰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지닌 아빠와 해치려는 사람들로부터 엄마를 보호하고 마법도 풀어야하는 메리다의 활약이 시작된다.
그해에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 한편을 만드는 픽사의 작품답다. 안데르센과 그림형제 동화의 어둡고 환상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그림은 깊고 원초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눈과 귀는 물론 엄마 사랑, 딸 사랑에 가슴도 움직인다. 딸 가진 가정이면 가족이 함께 보면 좋을 영화. 앞서 상영되는 단편 ‘라 누나’를 놓치지 마시길.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삼대가 달에 떨어진 별똥별을 치우는 이야기를 대사 없이 환상적인 그림으로 표현했다.
꼬리 문 복수극… 이번엔 전처 구하기
감독: 올리비아 메가턴. 출연: 리암 니슨, 메기 그레이스. 팜케 얀센.
그때까지 리암 니슨은 선구자이거나 누군가의 스승, 멘토였다. 유태인을 나치로부터 구한 ‘쉰들러 리스트’의 오스카 쉰들러, 아일랜드의 독립 영웅 ‘마이클 콜린스’, 오비원 케노비의 스승이자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발굴한 퀴곤 진(‘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이었다. ‘배트맨 비긴즈’의 악당 라즈 알 굴조차도 브루스 웨인에게 영웅의 자질을 일깨운 멘토였다. ‘테이큰’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논스톱 액션으로 단박에 리암 니슨을 액션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테이큰’이 돌아왔다.
이번에 납치되는 건 딸이 아니라 브라이언 자신이다. 주인공이 꼼짝달싹 못하면 누가 싸우느냐고? 우리는 이미 그가 건드려서는 안 될 인간병기임을 안다. 악당들의 손아귀에서 탈출한 그는 함께 납치된 옛 아내를 구하기 위해 악당들의 소굴로 뛰어든다.
전편이 딸의 사랑을 되찾기 위한 모험이었다면 2편은 전처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도전인 셈. 전편과 마찬가지로 불꽃같은 액션을 선보인다. 아쉬운 점은 속편임에도 액션이나 긴박감이 전편보다 못하거나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 뤽 베송의 액션물이 대개 그렇듯, 이 영화도 악당들이 너무 물러터진다. 몇몇 반짝하는 아이디어가 눈길을 잡지만 ‘테이큰2’의 포인트는 머리 쓰는 게 아니라 간결하며 효과적인 액션 아닌가.
어른이 된 곰인형… 성인판 토이스토리?
감독: 세스 맥팔레인. 출연: 마크 월버그, 세스 맥팔레인.
소심남 존과 곰돌이 테드의 좌충우돌 우정을 그린다. 왕따였던 어린 시절, 존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별똥별에 소원을 빌었다. “곰돌이 인형이 말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이튿날 놀랍게도 곰돌이 인형은 존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주인과 함께 곰인형도 자랐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어른에 된 존에게 곰돌이 테드는 골칫덩어리다. 대마초와 술을 입에 달고 살며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말끝마다 욕설을 해대는 테드 때문에 여자 친구 로리와의 관계도 위태롭다. 올 여름 미국 극장가에서 대박을 터뜨린 ‘19곰 테드’는 성인판 ‘토이 스토리3’이다. 아무리 행복했다 하더라도 유년의 추억을 떠나보내야 할 때가 온다. 곰인형에 생명을 불어넣는 이야기에 놀라고 미국식 성인 유머에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관계의 유한함에 불현듯 가슴이 찡해온다.
▶흥행 중인 영화는…
“널 괴물로 만든 건 이 세상이야”
감독: 김기덕. 출연: 조민수, 이정진, 우기홍.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하지만 영화 ‘피에타’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형에 처해진 ‘강도’와 그의 거짓된 어머니다. 끔찍한 방법으로 빚진 사람들의 돈을 뜯어내며 사는 강도. 그의 앞에 느닷없이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여인이 나타난다. “미안해 널 버려서.” 여인은 강도를 따라다니며 그가 저지르는 모든 악을 고통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의 힘은 강도에서 예수로 변모해가는 ‘강도’의 여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 데서 나온다. “너는 죄가 없다. 괴물로 만든 건 우리지만 너를 용서할 수 없다”는 엄마의 사죄와 복수.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절규하는 강도. 피에타, 뜻 그대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라’.
광대, 조선의 왕이 되다
감독: 추창민. 출연: 이병헌, 류승룡, 한효주.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은 “지랄하고 자빠졌네”를 종종 입에 올린다. 친근감의 표시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왕은 “이런 X같은…”이란 더 센 욕을 내뱉는다. 분노를 못 이겨 터뜨리는 비명이다. 물론 그는 진짜 왕이 아니다. 얼굴이 왕과 꼭 닮아 왕 노릇을 하게 된 광대 하선이다.
그의 분노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조정을 향한다. 사대의 예를 주장하는 대신들에게 “그대들은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호통치고, 백성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꾸짖는다. 저자거리에서 빌어먹고 사는 광대도 어떤 게 바른 정치인 줄 아는데, 예나 지금이나 먹물 먹은 엘리트들은 왜 모르는지. 지금의 정치가 ‘오버 랩’되지만 웃음만 흘릴 뿐 목소리 높여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게 ‘광해’의 미덕이다. 웃다가도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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