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종국 서예가ㆍ전 대전시 의장 |
더구나 그 농경사회의 기본 틀이 대개 집성촌의 동성동본들끼리 살아온 형태이거나 몇 가지가 오밀조밀 모인 취락구조의 특성이 그대로 남아서 배타성을 조장시켜온 것도 사실이다.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들보다는 산이 많은(70% 이상) 우리나라에서는 산 너머 저쪽 마을이 늘 생소하기만 하고 두렵기만 했다. 생소하고 두려운 것은 적대시하게 마련이고 적대시 하다 보니 이쪽에서 그 쪽에 가기도 싫고 그쪽에서 이쪽에 찾아오는 것도 전혀 반갑지 않다. 이러한 산간취락 형태는 결국 오늘날에까지도 지역감정 형성을 조장해 왔으며 이는 최근 민주화의 열기와 병행해서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비근한 예로 우리 충남이나 대전도 이러한 폐쇄성과 배타성이 비교적 강하다는 점에서는 예외일 수가 없지 않은가 한다. 더구나 충남은 좋은 의미로 보면 양반의 고장, 선비의 고향으로 그 전통성이나 역사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고장이요, 나쁜 의미로 보면 쓸데없는 아집과 보수적인 배타성이 아직도 엄존하고 있는 지방이라 하겠다. 이러한 폐쇄성 내지 배타성은 그 반작용이 자신들 끼리만의 밀착성 내지 편애성을 낳게 되고 이는 어느 지방 어느 고장 할 것 없이 소위 '텃세'라는 기형적 자기애와 이질적 대상에 대한 배신감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편파성은 우리나라 국민 전반의 의식구조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우선 우리 민족이 소위 한민족이라고 하는 단일혈통의 민족인 점에서도 심한 편파성 내지 편애성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배달민족이니 백의민족이니 해가면서 민족전체의 순수성과 단일성을 자랑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배타와 반외세니 하는 구호를 많이 내세우는 것도 결코 우연일 수만은 없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동족애, 동포애, 동향애, 동지애 등의 의식에 투철하고 이는 지방의 향토애, 도시농촌의 텃세 등으로 발전(?)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소위 동일집단의 편애 내지 과보호의 결과를 낳아 흔히 말하는 그룹 파워 형태로도 나타나게 된다. 그 단적인 예가 지연, 학연, 혈연 등이고 그밖에도 같은 사업, 같은 학문, 같은 예술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도 이러한 그룹파워가 위세를 떨치기 마련이다. 행이든 불행이든 필자가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다 보니 이러한 텃세 내지 그룹파워는 문화예술계에도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타지방 시ㆍ도는 말할 것도 없지만 필자의 활동 무대인 대전이나 충남에서도 문화예술인들의 텃세나 배타성도 무시 못할 만큼 내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이러한 동향애 내지 텃세가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기 고향을 사랑하고 자기 고향 특유의 문화예술인 내지 자신들과의 학연, 혹은 인연 등이 다른 문화예술인에 대해 의도적으로 배타하고 백안시하려고 하는 경향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아닌가 한다. 하물며 개인적으로 누구를 가깝게, 혹은 멀게 대하는 것이야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집단적으로 다시 말하면 그룹 파워를 이용해 특정인을 매도하거나 비방하는 사례는 더욱 딱한 텃세의 횡포가 아닌가 한다.
예술은 오로지 개인적 창조작업이요, 개인의 재기와 역량으로 표출되는 창작행위다. 백사람이 똘똘 뭉쳐도 어느 위대한 예술가 한 사람의 창작세계를 무시하거나 폄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술은 작품 그 자체의 우열로 그 가치가 판단되기 때문이다. 우리 충남이나 대전에서도 지방색도 좋고 지방에서 오랜 인연을 맺은 분들의 그룹 파워도 좋지만 이제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문화예술 분야에서부터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인 성향을 지양해 나아가야 할 때가 온 줄로 안다.
문화예술은 국가 민족도 초월하여 범세계적으로 초국가적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폭넓은 인간애와 예술애를 갖고 사소한 텃세에 안주하기 보다는 진정한 예술창작을 위해 우리지방 문화예술인들부터 확트인 예술관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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