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세]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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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세]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시사 에세이]김용세 대전대 법학과 교수

  • 승인 2012-09-24 14:31
  • 신문게재 2012-09-25 20면
  • 김용세 대전대 법학과 교수김용세 대전대 법학과 교수
▲ 김용세 대전대 법학과 교수
▲ 김용세 대전대 법학과 교수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범죄사건이 발생할 때면 언제나 엄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진다. 뇌물수수 사건이 보도되면 공무원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부패가 근절되지 않는다며 분개하고, 심지어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해도 어떤 나라에서는 음주운전이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라며 더 무겁게 처벌하라고 요구한다.

범죄자를 점점 더 무겁게 처벌하는 엄벌화 경향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 중에도 성폭력범죄에 대한 엄벌화 경향이 특히 뚜렷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성폭력범죄에 대한 처벌이 급속도로 강화되었다. 최근 2, 3년 사이에만도 성범죄자 신상공개 범위와 '전자발찌' 부착 대상이 확대되고 '화학적 거세'도 도입되었다.

이처럼 성폭력범죄에 대한 처벌이 계속 강화되었지만 성범죄 발생건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0년에 전국 검찰청에 접수된 성폭력사범은 2만1116명으로 2007년의 1만5819건에 비해 33.5%나 증가했다.

자신은 잡히지 않을 것이라 믿는 사람에게 중벌의 예고는 의미가 없다. “엄벌에 처하겠다”는 구두선보다 수사 경찰의 역량을 강화하여 모든 범죄자를 신속하게 검거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지난 8월 서울 광진구에서 가정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서진환 사건이 발생한 후 성범죄를 엄벌에 처하라는 여론이 또 다시 들끓고 있다. 그저께 양승태 대법원장까지 나서서, 성폭력범죄는 단지 개인에 대한 범죄일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어지럽히는 흉악 범죄이므로 더 이상 친고죄로 취급할 근거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친고죄란 피해자가 고소해야만 범인을 처벌할 수 있는 죄를 말한다.

형법이 일부 성폭력범죄를 친고죄로 규정한 이유는 첫째, 범인을 기소하여 재판 받게 하는 것이 피해자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정주부의 성범죄 피해사실이 알려지면 그 자녀를 비롯한 가족들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많은 경우에 그 가정은 깨지고 만다. 어린이나 청소년도 성범죄 피해사실이 알려지면 정상적인 교우관계나 학교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둘째, 사건 직후에는 피해배상을 고려할 여유가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의 피해자가 피해 배상을 희망한다. 성범죄 피해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 피해자와 그 가족은 이사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 본인은 물론 가족이 직장을 잃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피해자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범죄가 친고죄라면 피해 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처벌 여부를 피해자가 결정하기 때문에 범인은 어떻게든 피해자와 합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규정을 모두 폐지하자는 사람들은 성폭력범죄는 극히 흉악한 범죄이므로 피해자의 의사를 불문하고 국가가 직접 나서서 모든 범인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친고죄로 규정한 범죄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이나 '공중 밀집장소에서의 추행'처럼 극소수의 가벼운 성범죄뿐이다. 대중이 크게 분개하는 흉악한 성범죄사건은 현행법에서도 친고죄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입장을 무시한 채 모든 친고죄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칫 무책임한 구경꾼의 감정적 주장으로 보이기 쉽다. 다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피해자도 범죄자 처벌에 협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역시, 향후에 발생할지 모르는 범죄사건을 막기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관계부처와 정치권은 대중의 복수감정에 영합하여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하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효성 있는 정책수단을 강구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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