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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광복군이다 /국립대전현충원장

  • 승인 2012-09-17 13:26
  • 신문게재 2012-09-18 20면
  • 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한 폭의 수채화처럼 초록색 산허리에 수천개의 분홍빛 연등이 줄지어 매달려 있는 배롱나무 꽃길이 있다. 가장 뜨거운 8월에 가장 화사한 꽃을 피우는 그 나무 그늘 아래 앉으면 도종환 시인이 떠오른다.

시인은 '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 배롱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배롱나무를 알게 되자 길 떠나면 어디서든 배롱나무를 보게 된다. 보아주는 이 없는 곳에서 바다바람 맞으며 혼자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사랑하면 보인다'며 배롱나무를 떠올렸다. 백일동안 수없이 꽃이 져도 매일 새롭게 피워 올리는 배롱나무의 은근과 끈기는 광복군의 구국의 혼과 닮았다.

광복군이 잠들어 계신 애국지사묘역을 걸으며 이 시를 읽으면 시구가 다른 글자로 바뀐다. '광복군을 알기 전까지 그분들의 희생정신을 잘 몰랐다. 광복군을 알게 되자 구국의 혼을 느끼게 됐다. 오로지 조국 광복을 위해 무소의 뿔처럼 고난의 장정을 걸었던 분들이 계셨다. 광복군의 발자취를 보니 대한민국에 대한 선열들의 사랑이 보였다.'

9월의 강렬한 햇살 속에 태극기가 꽂혀 있는 어느 묘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묘비의 비문은 지극히 짧은 '그립습니다'라는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서운할 정도로 짧은 비문은 장문의 비문보다 더욱 절절한 가족들의 그리움이 묻어났다. 태극기가 꽂힌 묘비의 주인은 일본군에서 탈출한 학병 1호로 일제에 항거한 광복군이고 이 시대의 참스승인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다.



일본군에서 탈출해 중국 불로하 강변에 도착한 날, 식민지에서 태어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태극기를 그리고 독립을 향한 뜨거운 눈물로 애국가를 불렀다. 그리고 광복군이 되고자 중경으로 6000리 길의 여정을 떠난다. 그분의 장정이란 책을 보면 '발바닥이 소가죽처럼 두꺼워져 웬만한 것은 밟더라도 배기지 않았다. 걷는 것만이 희망이었다. 그래야만 중경에 도착하고 독립군에 참가해 원수를 무찌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고난의 길을 회고했다. 역경의 행로는 삼국지 적벽대전 무대인 파촉령에서 절정에 이르는데 제비도 넘지 못할 험준한 산을 눈보라가 몰아치는 12월에 오른다.

'우리는 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조상은 망국의 유산을 물려주어 이 고생을 겪고 있지만 후손들에게 절대로 이런 고생을 맛보게 해서는 안 된다. 압록강도 다시 건너고 한양성 복판에 태극기를 꽂자'며 두 주먹을 불끈 쥔다. 독립을 향한 의지는 이미 죽음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1945년 이청천ㆍ이범석 두 장군 부관으로 활동했으며 1945년 8월 18일 일본군을 무장해제 시키고자 여의도 비행장으로 무장한 채 들어왔다. 해방 후 중국사를 연구한 김 전 총장은 고려대 문과대 교수로 중국사를 가르쳤고 1982년 고려대 총장을 지냈다. 국무총리, 통일원 장관 등을 제의받았으나 모두 고사하고 학자와 교육자의 길을 고집했다.

여기 광복군들이 불렀던 노래가 있다.

'삼천만 대중 부르는 소리에 젊은 가슴 붉은 피는 펄펄 뛰고 반만년 역사 씩씩한 정기에 광복군의 깃발 높이 휘날린다. 광복군의 정신 쇠같이 굳세고 광복군의 사명 무겁고 크도다. 독립 조국광복 민주국가 세우자.'

빼앗긴 조국을 반드시 되찾겠다는 광복군의 기상이 노랫말 하나하나에 담겨 있다. 9월 17일은 한국광복군 창설 72주년이다. 불굴의 역사가 잊혀지지 않고 후세에 올바르게 전해져 우리 영토와 사랑하는 가족을 지켜야겠다는 올바른 안보의식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기를 바란다. 또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해 조국과 형제를 그리며 목 놓아 눈물로 불렀을 그 애끓는 광복군의 노래를 아이들과 함께 불러드리자. 그분들의 젊음을 바친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보훈의식을 고취하는 뜻 깊은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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