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닷찌플리마켓 대표 |
내게도 여행, 아니 짧고도 반복적인 여정의 노하우가 조금은 쌓인 듯하다. 새로운 곳 또는 와본 듯 가물가물한 동네의 정서에서 기억을 되짚으며 설레는 내 모습은 표정보다도 발의 움직임으로 이미 전달된다.
서른 즈음이 되어 지난 20대의 시간들을 잠시 돌아보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 기질 탓인지 그나마 다양한 사건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 같다. 내게 있어 거의 모든 여행의 시작이 우발적이고 즉흥적이다. 어쩌면 준비되지 않은 나의 신경계 일부 영역에선 다소 폭력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이지싶다.
이러하다보니 여행은 늘 혼자만의 시간이 되고 현실에서의 도피처가 되기도 하지만 작가로서의 길을 걷는 지금, 여행에서 떨어지는 부산물은 꽤 크다.
전시 차 잠시 밀라노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 곳에서 난생처음 백년가약을 맺고픈 사람을 만나게 됐다.
모든 인연이 누구에게나 늘 특별하게 시작하겠지만 낯선 이국땅에서 주는 감성적 에너지는 현실적 감각을 더욱더 떨어뜨린다. 여행에서 일어났던 짧고도 강렬했던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며 어느새 추억이 되었고, 하나의 그림처럼 그 당시의 감성으로 밀라노를 기억하게 됐다.
사실 이런 낭만적인 스토리는 극히 일부다. 거의 전투적이고 역동적인 여정이 늘 가까이에서 자주 벌어진다.
작업을 하기 전 한참 서울이며 부산, 지방 이곳저곳을 다니며 재미난 물건들을 사 모을 때 일이다.
거의 모든 여정을 혼자 다니다 보니 그걸 지켜보던 한 친구가 나의 행보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섣불리 따라나섰다가 내게 '미발'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여기서 미발은 “미친 발걸음”이라는 뜻으로 항간에 화제가 되며 지금도 친구들 사이에서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재밌는 사실은 지금도 나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인생과도 같은 여행은 늘 기대감에 차있고 설렌다.
여행과도 같은 인생은 늘 매력적이어서 훌훌 털어버린다. 다시 돌아갈 곳을 생각하면 그 어떠한 일도 감당할 만한 일일 것이다. 어릴 적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군 시절 몇 자 적어본 일기다.
“도현아, 아빠 출장 가는데 같이 갈까?”
“응.”
아빤 날 데리고 다니는 걸 좋아했었어….
이맘때 인 것 같다. 오늘같이 따듯한 날씨의 봄비, 오래전 맛본 익숙한 느낌이다. 차 바깥으로의 풍경.
선명하진 않지만 들떠 있는 내 모습이 느껴진다.
자동차의 외모나 승차감 보단 단지 신기하고 대단한 기계일 뿐.
아빠는 그걸 조종하는 하나님보다 큰 어른 내 아빠.
가로수의 숫자를 센다.
반대편에 오는 차의 이름을 맞춘다.
말도 안 되는 노래를 만들어 흥얼거린다. 그럴 때면 아빤 늘 말없이 웃고만 있었어 그리곤 나의 엉터리 질문에도 늘 부드러운 대답이었지.
“아빠, 지금 나오는 노래 뭐야?”
“Kansas의 Dust in the wind라는 노래야.”
눈을 감는다. 아주 잠깐….
그리고 순간은 지나간다.
맞아! 영원한 건 없어.
모든 건 먼지에 불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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