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난순 교열부장 |
고 2때 겨울방학을 며칠 앞두고 친구랑 몰래 극장에 갔다. 그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하는 영화 외에는 개인적으로 극장에 가는 걸 금했다. 저녁밥을 먹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떨리는 맘으로 본 영화는 '대부'였다. 영화내용이 뭔지, 출연배우가 누군지도 몰랐다. 길가 담벼락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간 거였다. 우리는 영화보는 내내 “저 배우 너무 잘생겼다”를 연발했다. 그것은 알 파치노의 '발견'이었다. 감미로운 영화 주제곡 속에 마피아의 냉혹한 보스로 성장하는 알 파치노의 그리스 조각같은 얼굴. 난방이 안되는 허름한 극장에서 추위와 무서운 학생주임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긴장으로 굳은 허벅지로 어기적거리며 기어나오던 그날 이후, 알 파치노는 내겐 잘생긴 남자의 전형이었다.
확실히 여자는 남성이 가지는 힘에 현혹된다. 그 남자의 '힘'이란 육체적인 힘이나 경제적인 힘, 개인적인 능력, 권력 등을 포함할 것이다. 신간 '엄마들의 포르노'라고 통칭되는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지배적 남성과 순종적 여성이라는 성적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사도ㆍ마조히즘적 성애장면이 많아 변태소설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내 취향은 독특해. 넌 나를 멀리 해야만 해”라고 속삭이는 크리스천 그레이. 하버드대 중퇴의 천재사업가이며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능가하는 외모의 젊은 부호 그레이는 세상에 존재할까? 작가 자신도 그레이는 판타지의 주인공일 뿐이라고 단정지었다.
영민하고 여성에 대한 지배욕이 강한 그레이는 실상은 영웅이 아니었다. 심각하고 깊은 감정적 결점이 있는 남자였다. 창녀를 어머니로 둔 어린 시절은 무시와 굶주림의 어둠의 세계였다.
상처받은 '영웅'은 위험하다. 그리고 거부할 수없는 매력의 속성을 갖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모든 남성에겐 원초적으로 왕(영웅) 에너지가 있다고 한다. 솔로몬처럼 현명하고 훌륭한 왕의 에너지가 있는 반면, 파괴적이고 잔학무도한 칼리큘라의 폭군의 에너지가 있다고 했다. 고대 로마 황제 칼리큘라의 광기와 학정, 가학주의는 놀라울 지경이다. 그렇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느 유형일까. 그에 대한 평가는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연구대상으로서의 그는 흥미롭고 극적인 삶을 산 매력있는 인간 유형이다.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면 박정희는 언제나 압도적으로 1위다. 박정희의 군사독재가 인권을 억압하고 정당한 정치과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할지라도, 대다수 국민은 그가 만든 역사에 대한 평가기준을 갖고 있다. 그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변절의 삶을 살아온 불쌍한 사람이다. 그는 지칠줄 모르는 권력욕의 화신이었다. 소학교 교사에서 일본군 장교, 국군장교, 남로당의 프락치, 극단적 반공주의자 그리고 대통령이 된 남자 박정희. 출세를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조국이든 동료든 배신을 밥먹듯 한 박정희는 자신의 전력에 대한 콤플렉스로 인해 냉혹한 지도자가 돼야 했다.
도올 김용옥은 '인간 박정희'와 '역사속의 박정희'를 달리 봐야한다고 했다. 박정희는 “무덤에 침을 뱉을 필요도 없는” 인간에 불과하지만, 경제발전이라는 역사에 남긴 공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강력한 대권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는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박정희의 생물학적 2세다. “5ㆍ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박근혜의 발언은 많은 사람을 우려하게 만든다. 아버지의 후광을 발판으로 삼아 성장하는 박근혜의 싹이 건강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은 냉혹한 '영웅' 박정희의 재림이 될 것인가.
사족 하나. 예전에 서구의 유명인사가 가장 이상적인 남성은 『개선문』의 닥터 라빅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를 합친 남자라고 했다. 재밌는 사실은 레트 버틀러의 화신 배우 클라크 게이블은 의치를 해서 입냄새가 심했다고 한다. 비비안 리가 그와의 키스신에서 꽤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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