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찬]호모 노마드, 멈추지 않는 인간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민찬]호모 노마드, 멈추지 않는 인간

[시론]민찬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12-09-12 15:09
  • 신문게재 2012-09-13 21면
  • 민찬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민찬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민찬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민찬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5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특별한 종(種)이 나무에서 내려와 두 발로 서서 동남 아프리카의 풍경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3만 년 전쯤에 인간은 여행을 통해 물물교환을 알았고, 물품들 간의 등가관계를 설정할 줄 알게 되었다. 시장의 배아가 형성된 것이다. 9000년 전에 인간은 포획한 동물들을 계속 교배를 시키면서 식용과 운송용으로 더 적합한 종자를 얻고자 애썼다. 인간은 이제 목축민이 되었다.”

자크 아탈리의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에서 찾아낸 구절이다. 과거의 노마드들은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불, 사냥, 언어, 농경, 목축, 신발, 옷, 연장, 제식, 예술, 그림, 조각, 음악, 계산, 바퀴, 글씨, 법, 시장, 세라믹, 야금술, 승마, 배, 신, 민주주의 등을 고안했다. 문명의 실마리가 노마드들의 손과 머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반해 정착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고작 국가, 세금, 감옥 등 옥죄는 것들뿐이었다.

기원전 3000년 경 북중국과 헝가리 사이의 스텝 초원과 사막에는 기마인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던 이 종족들은 기마술(騎馬術)과 천신(天神)을 기반으로 한 이동성 융합문명에 불을 지폈다. 그들은 기원전 1500년 무렵 알타이족, 인도유럽어족 등 두 개의 주요 집단으로 분리되었다. 자크 아탈리의 설명을 수용하면 '주몽신화'의 주인공인 우리의 주몽 일파도 알타이족의 한 부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형적인 노마드인 것이다. 한국신화가 보여주듯 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로 이어지는 주몽의 행로는 우리가 조상이라고 인정하는 북방의 기마인들이 이동한 행로와 정확하게 겹친다. 거기에 백제신화까지 하나로 연결하면 한반도 선주민들이 그려낸 노마드의 궤적이 그대로 나타난다.

농경 및 정주의 삶이 지배한 과거 5000년은 500만 년을 이어온 인류사의 흐름에 비춰 보면 잠깐 거쳐가는 오아시스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다시 찾아온 새로운 노마드의 시대는 새로울 것도 없고 이질적일 것도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따름이다. 이렇게 이 문명론자는 주장하고 있다. 인류가 노마드일 때 실로 많은 것들이 만들어졌으니 이규보의 '동명왕편'에도 주몽이 오곡의 종자를 품고 내려오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거듭 말하건대 신 노마드의 시대가 열렸다. IT혁명을 거치면서 인류 역사는 다시금 노마디즘이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5억 명 이상이 일 또는 정치적 사유로 인한 노마드 즉 이민자, 망명객, 해외체류자, 노숙자, 이주노동자들이고, 한 해 10억 명 이상이 자의든 타의든 여행을 한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노마드들이 도시에서 서식을 하고 있다. 거리거리마다 하루 온 종일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이다. 사람들의 부류를 둘로 가르면 하나는 토박이이고 하나는 떠돌이가 된다. 그런데 떠돌이 중에는 원래 있던 익숙한 떠돌이가 있는가 하면 전혀 새로운 이질적인 떠돌이도 있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만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떠돌이,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노마드가 된 인프라 노마드다. 자신만의 능력을 독점적인 브랜드로 삼아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는 떠돌이, 이들은 디지털시대의 첨병 하이퍼 노마드다. 같은 떠돌이지만 둘 사이에는 천양(天壤)의 차이가 있다.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의 영예를 차지했다는 소식이다. 수상식장에서 전통복장을 입고 민요 '아리랑'을 불러 화제가 되고 있다. 스스로를 일컬어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한 김 감독은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라고 한다. 전자공장과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일을 배우다가 쫓기듯 해병대에 자원입대를 했다고 하니 전형적인 인프라 노마드로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훌쩍 아무 마련도 없이 프랑스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로부터 2년에 걸친 프랑스에서의 경험과 충격은 그로 하여금 영화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그리고 20년이 경과한 오늘 그는 영화 하나로 세계를 움켜쥔 인물이 되었다. 한 곳에 멈추지 않은 이력이 그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으니 그는 이제 하이퍼 노마드가 된 것이다. 지금은 스몰월드(small-world)의 세상이다. 젊은이들이여, 기회가 되면 기회를 잡아 세상 밖으로 나갈 일이다. 김 감독을 영화와 만나게 해준 것도, 그리고 그를 세계적인 인물로 키운 것도 프랑스 행 비행기 티켓이지 않았던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취재]대전MBC 2024 한빛대상 시상식 현장을 찾아서
  2. 국립농업박물관, 개관 678일 만에 100만 관람객 돌파
  3. 농림부, 2025년 연구개발 사업 어떤 내용 담겼나
  4.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5. 제27회 농림축산식품 과학기술대상, 10월 28일 열린다
  1. 농촌진흥청, 가을 배추·무 수급 안정화 지원
  2. aT, '가루쌀 가공식품' 할인대전 진행
  3. KT&G 상상마당 제7회 상상 스테이지 챌린지 '설공찬' 최종선정
  4.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5.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