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등외'도 기를 펼 수 있는 세상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가기천]'등외'도 기를 펼 수 있는 세상

[세설]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 승인 2012-09-12 15:09
  • 신문게재 2012-09-13 21면
  •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초등학교 때였다.

선생님께서 “살아가는데 꼭 있어야 하는 것, 세 가지가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그 때 필자는 “공기, 물, 땅”이라고 말했고 다른 학생은 “공기, 물, 해”라고 대답했다. '공기'와 '물'은 공통으로 들었으나 '땅'과 '해'에서 갈리면서 초등학생 수준의 토론이 이어졌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선생님은 '의ㆍ식ㆍ주(衣食住)'라는 정답을 기대했는지, 혹은 다른 답을 요구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더 생각해보라'는 말씀으로 마무리 하신 것으로 기억된다.

차라리 '네 가지를 물으셨으면…' 한 것이 당시의 생각이었다. 올림픽이 끝난지 한 달이 되었다. 밤잠을 설치게 하고 비몽사몽간에 TV앞에 앉게 했던 올림픽도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슬슬 무덤덤해지고 있는데 왜 옛 일이 떠오를까?

금메달 수로는 개관적인 국력을 뛰어넘는 세계 5위라는 기대이상의 성적은 국민들을 환호하게 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왜 3위안에 들어야 메달을 주고 메달 수상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준결승전에 진출했으나 패하고 3ㆍ4위전에서도 패하면 메달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명예나 포상, 연금, 병역 이런 것들에서 엄청난 차이, 즉 실력과 더불어 컨디션, 대진 운, 심판 운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에서 불과 한 계단의 성적에 따라오는 큰 차등에 대해 의아한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메달을 따지 못한 4등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1초의 오심'으로 최소한 은메달을 따는 기회를 놓쳐 안타까움을 자아낸 펜싱 신아람 선수가 3ㆍ4위전에서 마저 패해 흘린 통한의 눈물. 여자 역도에서 4위에 머물러 메달획득에 실패한 뒤 그 자리에 꿇어 앉아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바벨에 '손 키스'를 한 장미란 선수의 처연한 모습. 두 차례의 연장전 끝에 패해 4위에 머문 '우생순' 여자 핸드볼 팀, 남자 축구에 이은 또 하나의 이벤트 여자배구 3ㆍ4위전인 한ㆍ일전에서는 패해 눈물을 쏟은 MVP 김연경을 비롯한 선수들, 노장 김경아가 분전한 여자 탁구 단체전 3ㆍ4위전에서의 패배들이 그렇다.

물론 경기나 경연에서 입상 순위를 매기는 데는 일정한 범위를 정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리고 대부분 '3등' 까지를 가리고 상을 준다. 숫자로서도 '3'이 갖는 뜻이 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삼'을 좋아 한다. 하지만 '사(4)'가 지닌 의미도 만만치 않다.

사각형의 태극기에 건곤감리(乾坤坎離) 사괘(四卦)를 넣어 하늘과 땅과 해와 달을 상징하고 아울러 동서남북 사방과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 인의예지(仁義禮智) 즉 사람으로 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 즉 사단(四端)을 뜻한다.

세계 4대 성인을 꼽고 인류문명의 발상지로 네 곳을 들고 있다. 축구 월드컵에서 올린 '4강 신화'는 지금도 감격과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또한 손연재 선수가 체조에서 거둔 5위의 성적에 환호하지 않았는가? 이제 세월이 더 흐르면 그 감격과 아쉬움은 우리의 기억에서 점점 멀어질 것이다. 그렇게 잊어가면서 웬만한 메달 못지않게 가슴을 울렸던 종목과 선수들은 더욱 희미해 질 것이지만 우리가 느꼈던 안쓰러운 상황들에서 의미를 찾아보면 어떨까?

'일등만이 기억되는 세상', '선거에서 2등은 없다'고 하는 냉엄한 현실에서 '등외'라 할 수 있는 4등과 그 너머까지를 말하는 것은 물정을 모르는 공상일까 하면서도 그들에게 '괜찮아'하는 위로와 '다시 도전하면 되지'라고 격려하며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과제를 띄워본다.

'등외'도 인정받고 기를 펼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면 치열한 경쟁사회를 다소나마 느슨하게 하고 세상은 좀 더 고르고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이룬 사람보다 더 많은 실패한 사람, 낙오된 사람도 다시 설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