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민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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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곽 위원장님은 청원이 고향이신데 어떻게 대전의 대덕구에서 터줏대감 어른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청원군 교육위원이셨고 옥산면의회 의장이셨습니다. 외숙이 충북도의회 의장이셨고, 외사촌형이 청주시장을 지내셨죠.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 속에서 배우며 봉사하는 활동을 자연스레 익히게 됐습니다. 전 형님 한분과 누님 네분 밑의 막내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제가 고3때 갑자기 뇌막염에 걸리셔서 서울의 성모병원에 입원하시게 됐습니다. 시골에서 살림을 맡고 계신 어머니와 군대 가 있는 형과 시집간 누나들을 대신해 아버지를 병간호하느라 대학 진학도 못했죠. 그 점이 아쉬워 책과 신문을 평생 가까이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병간호를 하느라 전답도 팔고 소도 팔고 하다보니 빚도 많이 지게 됐는데요. 아버지가 입원 후 석 달도 채 안돼서 그만 돌아가신겁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어찌나 서럽던지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지요. 군에 간 형을 대신해 졸지에 가장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4H 활동을 하며 과학적인 영농을 추구하는 농촌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군 제대후엔 농협에서 5년간 근무했는데 이때 낙농도 하고 단무지 공장도 운영했습니다. 직장생활 수입보다 사업 수입이 열배 이상 많았기 때문에 과감히 결단하고 대전 중리동에 이사 와서 삼성전자 대리점을 시작하게 됐지요. 삼성전자 대리점 사업이 최고로 잘 될 때는 중부권 최고의 매출액을 올렸고 직원들이 30명을 넘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사정상 대리점을 접게 되고, 99년 송촌동 선비마을에 첫입주해 해피건강랜드를 운영하면서 대덕구에 정착하게 된 거지요.”
-대덕발전구민위원회의 설립 배경이 궁금합니다.
“2005년 주민참여예산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대덕구 예산집행을 살피다가 구 재정이 너무나 열악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대전시 5개 구중 대덕구가 가장 취약했는데요. 전체 대전시 예산중 1.92%밖에 안되더군요. 대덕구는 시의 예산 지원도 타 구에 비해 열악할뿐 아니라 공단과 녹지 등 도시 기반시설도 열악하고, 지하철 노선에서도 제외됐지요. 대덕구가 소외되는 현실에서 주민들이 대내적으로 주민 단합과 결속력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불합리성을 외부로 표출하고자 자발적으로 모임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주민 소외론의 공감대 속에서 저희 위원회가 플래카드를 붙이고 대덕구 소외론에 대한 목소리를 높일 때 이를 사회적으로 이슈화시키는데 불을 지펴준 언론이 바로 중도일보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중도일보에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덕발전구민위원회는 중도일보의 응원에 힘입어 주민 여론과 자생단체 여론, 공무원 여론 등 대덕구 구민 역량 결집 강화를 통해 여론을 통합할 수 있었지요.”
-대덕발전구민위원회의 그동안의 활동 상황과 주요 성과는 어땠는지요.
“지역 대표를 주민의 손으로 선출하기 위해 2008년 4월1일에는 전국 민간인 최초로 국회의원 후보자 3명을 초청해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같은 해 12월12일에는 대전시교육감 후보자 4명을 초청해 토론회를 열었죠. 이때 김신호 교육감이 대덕구에 명품고등학교 설립을 약속해 신탄중앙중학교에 제1과학고를 설립하게 된 거지요. 대덕발전구민위원회는 구정 감시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구의 어려운 재정 타개를 위해 침묵 시위로 의정비 삭감 성과를 이뤄냈고, 주민 참여예산제와 주민참여 감사제에 참여했지요. 시정 감시활동에서는 시정과 시의정에 적극 참여해 도시철도 2호선 사업 추진과 동춘당 명품화 공원 사업, 시 주민참여 예산제 참여의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또 글로벌 인재육성 사업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인데요. 명문고등학교 유치와 학생 지원을 위해 대덕구와 시교육청, 한남대가 명문고교 설립 협약을 맺도록 했고, 학풍 참여로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삼동장학회를 통해 수천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습니다.
대덕 발전을 위한 현안 비전을 찾기 위해 매년 10건씩 주민공모사업을 벌이고 있고, 대덕발전 유공자를 선정해 시상하는 자랑스런 대덕인상 제도도 저희 위원회의 주요 활동상황입니다.”
-대덕발전구민위원회가 성공한 요인을 뭐라고 보시나요.
“주민 참여 예산제가 동기를 부여해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로 대덕구 발전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또 '대덕구 소외론'에 모두가 공감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결집하도록 했죠. 주민들이 직접 나서 대덕구 현안에 대해 대전시에 건의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대덕구소외론 서명운동, 의정비 침묵시위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죠. 그리고 대덕발전구민위원회는 철저히 정치인을 배제하는 정치적 중립을 지킨데다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했고, 각 동의 운영위원이 2인 이상 참여하도록 해 구민들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구에서 적극적으로 지원 협조해준 공이 큽니다. 대덕 발전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지향하면서 단체장의 구정 철학과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화합, 공무원들의 열정이 한데 모여 대덕발전구민위원회가 대덕구 균형 발전의 일등공신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자부합니다.”
“지역 현안 문제에 대해 전문적인 사고로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구성원들이 노령화되다보니 이제 젊은층 연령 확대로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느껴집니다. 젊은층들이 활동해야 위원회도 더욱 활성화될테니까요. 또 위원회가 자체 회비 성격으로 운영되다보니 자체 사업에 한계도 있어서 열악한 재정을 타파하기 위한 재정 자립도 향상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다른 주민 자생단체들과의 화합과 조화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위원장님의 개인적인 소망은 무엇인가요.
“막내 며느리임에도 단한번도 불평 없이 97세에 작고하신 내 어머니를 35년간 지극정성으로 모셔준 아내가 고마워 아내의 생일 때마다 정성껏 편지를 써서 줍니다. 빳빳한 신권 약간도 함께요. 편지와 신권 선물은 제 며느리에게도 해마다 똑같이 하는 생일선물입니다. 저와 아내는 고향 선산에 안장돼 있으신 부모님 묘를 일년이면 열두번 찾아 뵙고 문안인사 드리고 옵니다. 지금은 모두 번듯한 직장인이 되어 시집 장가간 2남 1녀의 아이들도 설때와 추석때는 다른 약속 잡지 않고 꼭 선산에 성묘를 함께 다녀옵니다. 제가 어머니 살아 생전에 늘 외출 후 다녀오면 큰 절을 올리곤 했는데 아이들도 본을 받아서인지 객지에서 직장생활하다 집에 오는 날이면 꼭 저희 부부에게 큰절을 올립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지요. 아이들이 이웃과 더불어 봉사활동하며 살아주면 참 좋겠습니다. 장학사업을 하고 싶었던 꿈을 이루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아이들이 그 꿈을 이뤄주리라 기대해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대덕구민발전위원회를 설립해 과학인재고를 유치하고, 의정비를 삭감하고, 국회의원이 구민들에게 의정보고를 하도록 하고, 대덕구 발전을 도모해왔다는 점에서 뿌듯한 보람을 느낍니다. 제 고향으로 아름다운 낙향을 하는 그날까지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봉사활동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대담ㆍ정리=한성일 사회단체 부장
●곽인상 위원장은 누구?
▲43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금계리 출생 ▲청주중, 청주공고, 충남대 경영대학원 수료 ▲삼성전자대리점(주)디지털월드 대표이사 ▲국제로타리 3680지구 한밭로타리클럽 회장, 2지역 대표 ▲바르게살기운동대덕구협의회 회장 ▲대덕구 회덕 2동 주민자치위원장 ▲해피건강랜드 굿모닝 헬스 대표 ▲대덕구 송촌동 주민자치위원장 ▲대전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회 회원 ▲대덕구 주민참여예산제 구민위원회 위원장 ▲대덕구 청소년수련관 삼동장학회 회장 ▲대덕구 평생학습추진위원 ▲대전시 시민참여예산제 위원장 ▲대덕구 학풍추진위원회 감사 ▲평화통일 대덕구 자문위원 ▲대덕구 치안협의회 위원 ▲동춘당 명품화공원화 사업 추진대책위원장 ▲청주곽씨 대전종친회장, 청주곽씨 대종회 수석부회장 ▲대전시장 표창, 행정자치부장관 표창,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회장 봉사장, 국민포장,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회장 금장증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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