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의 길고 긴 연금 생활에서도 독재정권과 '평화'를 무기로 싸운다. 하지만 영화는 독재에 항거하는 투사의 이미지로 수치를 내세우지 않는다. 시위 중인 대학생을 현장에서 총살하는 군부, 부상당해 병원에 실려 오는 학생을 보며 충격을 받는 모습은 있지만 짧다. 자신을 겨눈 총구를 향해 맨 몸으로 걸어가는 가슴 저릿한 장면도 있다. 그보다 가족과 떨어져 살며 가슴앓이를 해야 했던 한 여인의 일상과 심리를 진득하게 응시한다. 오히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남편 마이클 에어리스다. 암과 싸우는 와중에도 외국인으로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그는 수치를 대신해 동료들의 안전을 정부에 요구하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며, 수치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올리고, 두 아들의 뒷바라지까지 한다. '내조의 왕', 남편의 모습이 외려 인상적으로 남는다.
그래도 수치가 가진 본질적인 에너지가 영화를 지탱한다. 강인하지만 약하고, 냉철하지만 따뜻한 인간적인 힘. 수치를 체현하듯 그려낸 양자경의 연기는 최고다. 국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내'가 아닌 '타인'으로 살아야 했던 수치의 삶은 어떻게 사는 게 '가치 있는 삶'인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준다. 영화는 132분으로 끝이 나지만 미얀마의 민주화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안순택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