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본이 없는 '본 시리즈'가 가능할까. 주연배우 맷 데이먼도, 연출을 맡았던 폴 그린그래스도 없다. '본 레거시'는 창조주들이 모두 떠난 자리에서 과연 시리즈가 가능할지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결과는? 시리즈 속편으로 본다면 낙제점. 그러나 시리즈에서 벗어나 그저 새로운 영웅 탄생이란 시각에서 보면 합격점을 줄만하다.
첫 장면, 주인공 애론이 물속에 떠있는 실루엣은 '본 얼티메이텀'의 마무리, 물에 잠긴 제이슨 본의 마지막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어지는 거냐고? 그건 아니다. '레거시(Lagacy)', 즉 '유산'은 시리즈를 잇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제이슨 본이 남긴 '어떤 것'이기도 하다. 후자의 유산, 본이 남긴 어떤 것은 '불똥'이다.
제이슨 본에 의해 트레드스톤의 인간병기 육성 프로그램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CIA는 곤경에 처한다. 그 불똥이 국방부로 튄다. 국방부도 '아웃컴'이라는 슈퍼솔저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 아웃컴의 책임자 바우어(에드워드 노튼)는 프로그램을 은폐하기 위해 실험대상과 관련자 모두를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알래스카로 생존훈련을 떠난 애론 크로스(제레미 레너)와 그를 검진해온 과학자 마르타 셔링(레이첼 바이스)도 제거 대상이다. 기지를 발휘해 살아남은 애론은 마르타와 함께 도망친다. 본 시리즈 특유의 간결하고 긴박한 액션과 군더더기 없는 전개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실망스러울 것이다. 액션에 상당히 힘을 주긴 했지만 이음매가 헐거워 연결성이 떨어지고 기발하다거나 강렬하고 화끈한 한방도 없다.
애론 역의 제레미 레너도 맷 데이먼이 본으로 보여준 매력에 미치지 못한다. 망설임과 혼란 속에서 위협과 싸워나가는 제이슨 본의 인간적인 깊이는 잊는 게 낫다. 눈부시고 빈틈없는 애론의 액션은 마치 기계 같다. 같은 맨몸 액션이지만 애론은 로봇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애론이 슈퍼솔저 프로그램의 실험대상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라. 약물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양심의 가책은 억제하고, 체력은 최대화하는 실험이다. 게다가 그는 본처럼 기억이 지워지지도 않았다. 그러니 로봇 같은 느낌이 나야 맞다.
영화도 그렇다. 비교를 걷어내고 영화 자체만 본다면 꽤 볼만한 액션영화다. 마닐라 골목의 비좁은 틈으로 떨어지는 낙하신, 아찔한 오토바이 추격신 등 몇몇 액션신은 온 몸을 짜릿하게 자극한다. 비록 짧지만 한국 관객들에겐 팬 서비스도 제대로 한다. 강남역 일대 낯익은 서울의 모습이 잠깐 등장한다.
본 시리즈 4편? 혹은 스핀오프? 어느 것도 아니다. '본 레거시'는 본 시리즈의 '리부트'다. 액션이든 드라마든 고저장단을 맞추지 못해 균형을 잃고 흔들리는 아쉬움이 있지만. 새로운 음모, 새로운 영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증을 일으키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안순택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