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1000만원가량 등록금내고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하위 15% 대학'에선정되면 누구 책임인가요? 저희 책임인가요? 아니면 취업 못한 선배들의 책임인가요?"(재정지원제한대학 재학생)
“지난 일년간 '부실대학'이라는 낙인 속에서 받았던 위축감과 불안감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지난해 재정지원제한대학 및 학자금대출제한 대학 B 교직원)
갓 스물살부터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다닌 학교가 하루 아침에'부실대학'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문 닫는 대학=2003년 개교한 천안시 병천면 선교청대(학교법인 대정학원)가 지난달 문을 닫았다.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퇴출 대학으로 뽑혀 강제 폐교가 된 것이다. 선교청대의 재적 학생 수는 130명(올해 기준)이다. 증원 조건인 수익용 기본재산 기준 17억9000만원을 충족시키지 못해 올해 신입생은 아예 뽑지 못했다.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정원 동결ㆍ모집 정지ㆍ감축 조치를 받았기 때문이다. 올해 졸업생 18명 중 3명만 취직했다. 올해 선교청대 등록금은 420만원이었다.
선교청대는 기준 미달로 지난해 신입생 35명만 할당받았지만 66명을 선발했다. 시간제 등록생(입학하지 않고 인터넷 강의를 통해 학점을 취득하는 제도) 수만 명을 모집, 이들의 등록금 50억여원을 교비회계 처리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받았다. 고졸 학생 2명과 이수학점 미달자 2명에게 석사 학위를, 이수학점 미달자 6명에게 학사 학위를 수여하기도 했다.
학교법인 대정학원은 지난달 27일 교과부를 상대로 학교폐쇄명령처분 및 학교법인해산명령 취소 청구소송을 서울 행정법원에 제기한 상태다. 또한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31일 전국 337개 대학 및 전문대학 에 대한 평가를 거쳐 '2013학년도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과 학자금대출 제한대학'을 각각 선정, 발표했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선정된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은 4년제대학 23개교, 전문대 20개교등 43개교가 선정, 이 가운데 13개교는 학자금 대출 제한대학으로 포함됐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대학 9개교, 지방대 34개교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충남지역 대학 가운데 배재대와 청운대, 두 곳이 올해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 명단에 포함됐다. 지난해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 명단에 포함됐던 대전대, 목원대, 중부대 등은 올해 굴레에서 벗어났다.
대전대와 목원대, 중부대 등 대전권 3개 대학은 지난해 학자금대출 제한과 정부재정지원 제한 대학 명단에 포함된 이후 정부 지원 이외 학생들의 진로와 연계되는 정부 부처 사업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이들 대학은 고용노동부에서 주관하는 청년직장체험프로그램, 청년 취업진로사업, 창조 캠퍼스 조성 사업 등 학생들의 진로와 직접 연계되는 지원사업에 신청은 가능하지만 실제 내부적으로 불이익을 당했다.
청년직장체험프로그램은 재학생들이 취업연수생 신분으로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 등에서 2개월에서 6개월 간 사무보조 등 실제 근무를 주선, 올바른 직업의식과 직업설계능력 향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청년취업진로지원사업은 진로상담과 경력관리, 산업체와의 취업알선, 구인업체 발굴 등 재학생들의 취업난 해소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창조캠퍼스 지원사업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대학생에게 이들의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구체화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전국 10개 대학에 20억을 지원한다. 중소기업청이 선정하는 창업선도대학 육성사업에서도 제외당하고 있다. 창업선도대학은 대학과 지역사회 전반의 창업 열기 확산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역별 거점대학을 선정, '예비기술창업자 육성사업' 및 '창업교육 패키지' 등을 일괄 지원하는 사업이다.
창업선도대학에 선정되면 창업강좌 3000만~1억원 창업동아리 5000만~1억5000만원 기술창업아카데미 5500만원 지역 창업경진대회 개최 1억원 창업지원단 운영 1억2000만원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목원대 3학년 재학생 이 모(23)씨는 “지난해 학자금대출 제한과 정부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선정된 이후 재학생으로 충격이 크다”며 “이런 상태에서 진로와 연계될 수 있는 각종 정부 사업조차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까지 박탈당하는 것은 너무하다”고 말했다.
▲진정한 피해자는 '학생'=학령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학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부실대학 퇴출을 포함한 대학 구조개혁을 진행하고 있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그러나 대학 현장에서는 정부가 부실대학 선정의 1차 피해자가 학생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우려의 시각이 높다. 재정지원제한 대학의 한 관계자는 “결국 부실대학이라는 불명예 속에 가장 피해자는 학생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측면에서 학생들에게 할말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학자금 대출제한 대학에 선정되면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들이다. 이들 '제한대출' 그룹에 속하는 8개교의 학자금 대출한도는 등록금의 최대 70%까지, '최소대출' 그룹의 5개교는 대출한도가 등록금의 최대 30%까지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학생과 학부모들로서는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충남의 A 대학 교수는 “미국, 일본 등과 비교할 경우, 우리나라는 인구 1인당 대학 수가 적은 편”이라며 “대학 수를 줄이기보다는 각 대학의 정원을 함께 줄이는 방향으로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고등교육법상 학교 폐쇄 방식으로는 부실대학 퇴출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학의 비리가 발견된 뒤 감사와 수차례의 예고를 해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 진행이 더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교 폐쇄 시 잔여재산을 국고에 귀속하게 돼 있어 구조개혁을 활성화하려면 자발적 퇴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즉, 대학이 스스로 문을 닫으면 청산 재산을 설립자에게 어느 정도 돌려주는 등 자발적 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대학 구조조정 부작용과 선의의 피해자인 재학생, 교직원 등의 불안과 혼란을 해소해주는 방안 수립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유진호 정신과 전문의는 “다니던 직장과 학교가 부실대학 등으로 낙인 될 경우, 관련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며 “상담 등 구체적인 정신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배문숙 기자 moons@
※본 시리즈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