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얘들아, 안녕하니?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영수]얘들아, 안녕하니?

[교육단상]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 승인 2012-09-04 14:14
  • 신문게재 2012-09-05 20면
  • 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 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 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는 날, 우리 반 모든 학생이 건강하게 교실에 앉아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환하게 웃는 녀석들을 보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풍이 지나간 지금 평온한 마음으로 2학기를 시작하고 싶은데, 요즘 뉴스를 보면 아이 키우기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등하굣길에서도, 학교 안에서도, 동네 안에서도…. 그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다.

학교 오가는 길이 위험해서 부모의 자가용을 타고 등하교하는 일은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학생들에게 필수품이 되어버린 손전화는 학생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호신용이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들은 자녀의 등하교를 위한 도우미를 구하고, 심지어 집 안 상황을 손전화로 실시간 볼 수 있는 상품도 나왔다고 한다. 집 안 조차도 이제는 안전하지 못한 세상이 된 것이다. 언제부턴가 학생들과 나누는 종례 인사가 “차 조심! 사람 조심”이 된 우리 반 풍경이 여간 씁쓸하지 않다.

나 또한 세 아이의 엄마이기에 많이 불안하다. 일을 하다 보니 아이들의 등하굣길은 물론이고, 방과 후 몇 시간은 자기들끼리 보내야 한다. 근처 학원 다니는 길 역시 아이들끼리 다닌다. 처음엔 불안한 마음에 손전화를 해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손전화의 폐해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건 관두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근처에 시어머님이 계셔서 가끔 우리 집에 와주시고, 이웃들이 아이들을 잘 보살펴주셔서 큰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과연 마음 놓고 있어도 될 일인지 자꾸만 걱정이 된다.

지난주 학교에서 아동 성범죄에 관한 안내장이 가정통신문으로 나갔다. 다른 안내장은 그냥 학생들에게 전달만 해주는데 이번 안내장은 내가 꼼꼼히 학생들에게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장을 읽어가며 우리 반 학생들에게 내용 설명을 하자니 자꾸만 슬퍼졌다. 왜 학생들에게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하는 건지, 친구들도 이웃들도 모두 위험할 수 있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꼭 해야 하는 건지.

서로 사랑하고 믿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교실에서 낯선 사람하고는 말도 하면 안 되고, 이웃 어른들이 예쁘다고 몸을 조금이라도 만지면 “싫어요. 안돼요. 하지 마세요”를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고, 무슨 일이 생기면 OOO 번으로 빨리 신고해야 한다고, 친구들끼리도 장난삼아 몸을 만지는 건 성희롱이 될 수 있으니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된다고, 이런 무섭고 살벌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힘주어 가르쳐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슬펐다.

이런 세상이 된 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경쟁만을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 따스함과 끈끈함이 결여된 가정,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이 없는 학교, 관심과 나눔이 없는 이웃, 우정과 배려가 메마른 친구 관계,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다양한 미디어들만 넘쳐나는 비인간적인 세상, 그런데 서로 남 탓만 하느라 정신이 없다. 사회는 학교 탓만 하고, 학교는 가정 탓만 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웃에 사는 친구와 어깨동무하며 등교하고, 놀이터에서 해가 질 때까지 놀다가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친구와 아쉬운 인사를 나누며 집으로 들어가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싸워서 코피가 터지고 그 일로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쑥스러운 화해의 말을 건네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내가 너무 이상한 걸까? 난 이런 모습을 기대하며 오늘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취재]대전MBC 2024 한빛대상 시상식 현장을 찾아서
  2. 국립농업박물관, 개관 678일 만에 100만 관람객 돌파
  3. 농림부, 2025년 연구개발 사업 어떤 내용 담겼나
  4.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5. 제27회 농림축산식품 과학기술대상, 10월 28일 열린다
  1. 농촌진흥청, 가을 배추·무 수급 안정화 지원
  2. aT, '가루쌀 가공식품' 할인대전 진행
  3. KT&G 상상마당 제7회 상상 스테이지 챌린지 '설공찬' 최종선정
  4.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5.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