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
학교 오가는 길이 위험해서 부모의 자가용을 타고 등하교하는 일은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학생들에게 필수품이 되어버린 손전화는 학생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호신용이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들은 자녀의 등하교를 위한 도우미를 구하고, 심지어 집 안 상황을 손전화로 실시간 볼 수 있는 상품도 나왔다고 한다. 집 안 조차도 이제는 안전하지 못한 세상이 된 것이다. 언제부턴가 학생들과 나누는 종례 인사가 “차 조심! 사람 조심”이 된 우리 반 풍경이 여간 씁쓸하지 않다.
나 또한 세 아이의 엄마이기에 많이 불안하다. 일을 하다 보니 아이들의 등하굣길은 물론이고, 방과 후 몇 시간은 자기들끼리 보내야 한다. 근처 학원 다니는 길 역시 아이들끼리 다닌다. 처음엔 불안한 마음에 손전화를 해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손전화의 폐해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건 관두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근처에 시어머님이 계셔서 가끔 우리 집에 와주시고, 이웃들이 아이들을 잘 보살펴주셔서 큰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과연 마음 놓고 있어도 될 일인지 자꾸만 걱정이 된다.
지난주 학교에서 아동 성범죄에 관한 안내장이 가정통신문으로 나갔다. 다른 안내장은 그냥 학생들에게 전달만 해주는데 이번 안내장은 내가 꼼꼼히 학생들에게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장을 읽어가며 우리 반 학생들에게 내용 설명을 하자니 자꾸만 슬퍼졌다. 왜 학생들에게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하는 건지, 친구들도 이웃들도 모두 위험할 수 있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꼭 해야 하는 건지.
서로 사랑하고 믿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교실에서 낯선 사람하고는 말도 하면 안 되고, 이웃 어른들이 예쁘다고 몸을 조금이라도 만지면 “싫어요. 안돼요. 하지 마세요”를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고, 무슨 일이 생기면 OOO 번으로 빨리 신고해야 한다고, 친구들끼리도 장난삼아 몸을 만지는 건 성희롱이 될 수 있으니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된다고, 이런 무섭고 살벌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힘주어 가르쳐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슬펐다.
이런 세상이 된 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경쟁만을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 따스함과 끈끈함이 결여된 가정,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이 없는 학교, 관심과 나눔이 없는 이웃, 우정과 배려가 메마른 친구 관계,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다양한 미디어들만 넘쳐나는 비인간적인 세상, 그런데 서로 남 탓만 하느라 정신이 없다. 사회는 학교 탓만 하고, 학교는 가정 탓만 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웃에 사는 친구와 어깨동무하며 등교하고, 놀이터에서 해가 질 때까지 놀다가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친구와 아쉬운 인사를 나누며 집으로 들어가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싸워서 코피가 터지고 그 일로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쑥스러운 화해의 말을 건네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내가 너무 이상한 걸까? 난 이런 모습을 기대하며 오늘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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