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변호사 |
전 세계적으로 정의의 여신상은 대부분 서서 오른손에 칼을, 왼손에는 천칭저울을 들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정의의 여신은 독특하게도 앉아 있으며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왼손에 법전을 들고 있다. 예술이란 작가의 자유로운 창조물이라고 하지만 예술이 무엇인가를 표현할 때에 적어도 그 표현의 올바른 의미는 나타나야 하지 않겠는가? 정의의 여신이라면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작가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의 정의의 여신은 법전을 왼손에,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들고 있다. 이 조각에서 보이는 작가가 본 정의란 무엇일까? 바로 법전을 의미하고 있는 것 외에 달리 아닌 것처럼 보인다. 대법원에서 마음에 들어 대법원의 대법정 앞에 놓았으니 이 조각상을 통해 대법원에서는 정의란 바로 법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법관이 법전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의란 법전과는 다른 것이다. 사실 우리 시대의 정의를 법전으로 보고 있는 조각상은 정의(正義)에 대한 최악의 정의(定義)인 것이 분명하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박정희 대통령시절 유신헌법을 만든 헌법학자뿐 아니라 그 시대의 법조인들은 인간이 만든 법률이 얼마나 인간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경험했다. 그리고 법률이 위정자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경우에 인간에 대한 억압과 폭력 외에 달리 아니라는 것도 똑똑히 보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법원은 정의의 여신상을 통해 정의를 법전으로 보는 반복된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법 만능의 사고가 아직도 우리 법조계를 어두운 그림자처럼 덮고 있는 것이다. 정의란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치열함이며 이를 실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힘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시대에 디케는 오른손에 칼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왼손에 균형을 뜻하는 천칭저울을 들게 되었고 인간의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본 근대에 이르러 정의란 강자나 약자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아야 된다는 의미에서 디케의 눈에 눈가리개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대법원의 정의의 여신상, 그 조각은 정의의 여신이라기보다는 법전에서 정의를 찾는 어리석은 이 시대의 법조인의 상징처럼 보이는 것은 필자의 지나친 편견 때문일까?
<대전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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