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시업'은 여러 장르의 곡을 조합해 새로운 곡을 만드는 음악용어. 지금은 인터넷 검색, 앱, 소설, 영화 등 쓰임이 확장됐다. 매시업 소설가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는 2009년, 새책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를 들고 홍보차 미국 곳곳을 돌았다. 어디를 가나 그의 눈에 띈 것은 링컨과 뱀파이어였다. 그해는 링컨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였고, 당시는 틴에이저들이 『트와일라잇』에 열광할 때였다. 스미스는 링컨과 뱀파이어를 잇는 이야기를 생각했고, 소식을 들은 팀 버튼 감독은 호기심이 동했다. 기괴한 상상을 영화 동력으로 삼는 팀 버튼에게 '뱀파이어와 싸우는 대통령'이란 아이디어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역사적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뱀파이어 영화는 지금껏 없었다.
그렇게 탄생된 '링컨: 뱀파이어 헌터'는 황당한 이야기치곤 꽤 그럴싸하다. 링컨을 뱀파이어 사냥꾼으로 치환하는 과정은 매끄럽고, 링컨이 뱀파이어를 상대로 도끼를 휘두르는 장면은 스피드와 긴박감이 넘친다. 흥미로운 것은 남북전쟁에 대한 상상력이다. 노예를 소유한 남부 농장 대지주들은 실은 뱀파이어이며, 이들은 마음 놓고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노예제도를 지키려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를 죽인 뱀파이어에게 복수하기 위해 헌터가 된 링컨은 다시 도끼를 꺼내 들고 남북전쟁의 복판으로 뛰어든다.
'원티드'의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신선하고 총기 넘치는 액션 신을 보여준다. 뱀파이어를 쫓던 링컨이 초원을 달리는 말떼 속에서 뱀파이어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영상미가 어우러진 '명장면 감'이다. 배우들의 진중한 연기도 좋다. 우리가 아는 링컨과 비슷한 외모에 시원시원한 액션뿐 아니라 섬세한 감정 연기도 훌륭히 소화해 낸 벤자민 워커는 '도끼를 휘두르는 대통령'이란 황당한 설정을 잊게 만든다.
미국에선 가장 존경하는 위인으로 꼽히는 링컨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국내 개봉을 앞두고 방한한 베크맘베토프는 “동양 무술을 펼치는 미국 대통령을 한국 관객들은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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