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기린 바텔스ㆍ엘리너 허먼 저 |
가나 오투암의 왕이었던 외삼촌이 타계하고 나서 왕으로 지목된 사람이 바로 페기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페기는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미국에서 30년을 살아온 사람에게 뜬금없이 전화해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왕이 되어달라니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소식을 전한 친척은 진지하게 가나로 건너와 취임식을 치르라 하고, 그 다음날부터 출근길에서는 자꾸 “네가 왕이다”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게다가 왕궁의 뒷길을 거니는 꿈을 반복해서 꾸었던 젊은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게 맴돈다.
결국 페기는 왕이 되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긴 휴가를 내어 아프리카 대륙의 가나로 떠난다.
일어날 수 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화다. 가나에서 태어나 20대 중반에 미국 워싱턴 DC로 이주한 페기린 바텔스(59)는 4년 전 고향의 친척으로부터 “오투암의 새로운 왕으로 추대됐다”는 전화를 받는다. 오투암은 7000여 명이 사는 가나의 작은 부족 마을. 페기의 조상이 뿌리를 내린 곳이다. 25년간 부족의 왕으로 봉직한 외삼촌이 서거하면서 차기 왕으로 페기가 추대된 것이다.
책은 페기가 왕으로 간택된 후 2년 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오투암을 희망의 땅으로 변화시켜나가는 페기의 리더십은 지금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페기는 1년에 5~6주만 오투암으로 건너가 통치한다. 평소에는 전화로만 보고를 받는데, 다양한 배경의 인물을 정치에 참여시키면서 견제가 가능한 통치체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는 아프리카 대륙이 보다 이 책을 통해 친근하게 다가온다. 페기가 자신의 고향을 이해하는 과정을 쫓아가다 보면, 아프리카인들의 국민성, 역사 의식, 사회 문제 등을 자연스럽게 공부할 수 있다.
페기는 여전히 미국의 작은 아파트에 산다. 그리고 아침마다 1992년식 혼다 자동차를 운전해 대사관으로 출근한다. 권력은 나눠갖지만 리더로서 책임을 다하는 여왕의 모습은 후덕한 그의 인상과 겹쳐지며 따뜻한 울림을 준다. 그가 일으킨 변혁의 바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세종서적/페기린 바텔스ㆍ엘리너 허먼 지음/김미정 옮김/544쪽/1만4000원
배문숙 기자 mo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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