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정희 금산 용문초 교사 |
올 3월 학교를 옮겼다. 전교생이 여든 명 남짓 되는 작은 학교다. 줄곧 한 반에 서른 명 이상 되는 학급에서 담임을 맡다가 한 반에 학생이 열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꿈의 교실'에서 학생을 가르친다는 생각에 처음 발령을 받아 교사가 되었을 때의 설렘이 되살아났다. 처음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교실을 가득 메운 5학년 열일곱 친구의 맑은 눈빛과 따뜻한 기운이 한없이 좋았다.
첫날 점심때.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낯선 장소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학생들을 살피고 있는데 그때 갑자기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차갑고 작은 손이었다. 잡은 손을 따라 올라간 곳에는 안경을 낀 장난기 어린 눈에 종알종알 쉼 없이 말을 하던 우리 반에서 가장 키가 작은 친구가 있었다. 그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는 것에 낯선 선생님을 친구로 받아준 것 같아 내심 고마운 생각이 들어 나도 그 아이의 손을 살포시 잡아주었다. 배식을 기다리던 줄이 줄어들어 손을 놓아야 할 때가 왔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내 손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손을 놓지 않겠다고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의 손을 억지로 떼어 놓으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5학년 담임 맞나?'
다음 날 아침. 1교시 수업시간이 되었지만, 그 아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학생들의 말로는 집이 학교와 멀어 통학시간이 길고 할머니, 아버지와 살지만 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가 그 친구를 양육하고 있다는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늦잠을 자는 날이 늘어나고 이런 손자가 안타까운 할머니는 손자를 억지로 깨우지 못해 지각이 잦다고 했다. 20여 분이 지나자 운동장에 택시 한 대가 들어섰다. 그 친구였다.
“무슨 일로 늦었어?”
“늦잠 잤어요.”
“조금 일찍 일어나. 아침은 먹었어?”
“아니요. 늦어서 못 먹었어요.”
나는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친구가 수업준비 하기를 기다려 수업을 이어가는 것 말고는…. 2교시가 끝나고 중간 놀이시간 우유를 마시며 슬며시 교실에 두었던 간식을 꺼내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허겁지겁 배고픔을 달래는 그 아이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지금도 그 아이는 하루에도 열두 번 내 손을 잡곤 한다. 심지어 내 허리를 두 팔 벌려 한 아름 안기도 하고, 뒤에서 내 목을 껴안고 놓아주지 않을 때도 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아이가 없는 내게 그 아이의 행동은 때론 이해의 수준을 넘어 오해의 상태가 될 때가 가끔 오곤 한다. 그럴 땐 아이의 행동에 대한 부담스런 내 심정을 솔직히 드러내며 둘렀던 아이의 팔을 억지로 풀고 굳어진 표정으로 꾸지람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그 아이는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선생님 얼굴이 제일 예뻐요. 완전 젊어 보여요. 선생님이 정말 좋아요. 우리 엄마예요'라는 달콤한 말로 나를 다시 피식하고 웃게 만들어 버린다.
며칠 전 동료 선생님들과 운동장에 나갔다가 현관에 함께 들어섰다. 현관 맞은편에 그 아이가 우리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이모, 고모 다 모였네!”
'엄마'라는 말이 여전히 부담스럽게 들렸지만 내가 그 아이를 가르칠 수 있어서, 내가 그 아이의 엄마를 대신할 수 있어서, 학교가 그 아이의 가족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 드디어 나에게도 열두 살짜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여운 아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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