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맨션엔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산다. 재개발을 앞둔 이곳은 의붓딸을 잃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희(김윤진)네를 중심으로 살인마와 피해자, 살인범으로 몰리는 사채업자와 의심하는 사람들, 공포에 떠는 주민과 살인을 막으려는 이들이 모두 이웃인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연쇄살인사건에 벌벌 떨던 주민들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고 살인범을 막으려 마음을 모은다. ‘이웃사촌’도 아니고 ‘이웃사람’이었던 이들은 이때부터 비로소 ‘이웃’이 된다. 과연 주민들은 살해된 경희의 딸 여선(김새론)과 또래인데다 얼굴까지 똑같아 승혁의 표적이 된 수연(김새론)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인기 웹툰 작가 강풀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긴 ‘이웃사람’은 도시라는 이름의 섬에서 매일 마주하며 살아가는 타인에 대한 공포를 건드린다. 소통의 단절이 가져오는 음습하고 소름 돋는 공포, 그럼에도 인간을 믿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까지 원작의 미덕을 충실하게 살려냈다.
오싹하고 안타까우면서 의외로 터지는 웃음도 있다. 김휘 감독은 첫 영화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노련한 연출력을 과시한다. 연쇄 살인범의 잔혹한 살인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빚어내는 솜씨, 귀신이 등장하는 호러, 스릴러를 대신하는 드라마 등 적절한 영화적 장치로 서스펜스를 쌓아가는 힘도 좋다. 무엇보다 재미에 사회적 메시지를 녹여낸 점은 주목할 만한 성취다.
만약 ‘이웃사람’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는다면 캐스팅의 승리다. 원작과의 높은 싱크로율에 더해 기존의 이미지를 활용한 배우들과 더할 나위 없이 적확한 연기는 웹툰을 잊고 스크린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다.
극을 지배하는 서스펜스는 살인범 승혁 역의 김성균의 몫.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그는 대사를 최소화하는 대신 서늘한 눈동자, 조커처럼 웃는 입, 땟국에 전 피부로 원작에서 그려진 살인마보다 더 소름끼치는 인물을 보여준다. 절대악에서 사채업자 혁모에게 흠씬 얻어맞는 장면에선 보통 사람까지 연기 폭도 넓다. 사채업자 혁모 역의 마동석은 ‘악’을 처단하는 대리인으로 활약하며 통쾌함과 함께 웃음을 맡아 영화에 재미를 더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내성적인 죽은 소녀 여선과 활달한 수연을 자유롭게 오가며 1인2역을 연기한 김새론과 마음속의 죄책감을 털고 죽은 딸과 화해하는 김윤진의 모성 연기도 앙상블을 이룬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매력적인 설정과 인물의 드라마 덕분에 자잘한 단점들은 쉽게 잊힌다. 원작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재미를 다시 느낄 만하고 원작을 모르는 관객들은 손에 땀을 쥐고 볼만하다.
살인범이 누군지는 알고 있다. 피자가게 배달부(도지한)는 사건 발생 때마다 피자를 시켜먹는 사람을 주목한다. 경비원(천호진)은 혼자 사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수도세가 많이 나오는 주민을, 가방가게 주인(임하룡)은 시체가 담긴 가방과 똑같은 가방을 사간 사람을 의심한다. 사건초기 이들이 마나 말을 나누고 용기를 냈더라면 희생은 더는 없었을지 모른다. 소통의 단절과 부재가 가져온 비극일 터. ‘이웃사람’은 그렇게 ‘이웃’이 되는 방법을 일러준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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