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면서도 우리는 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법집행과는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이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보장하는 게 법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일쑤다. 증빙서류를 발급 받으러 가는 게 아니라면 선뜻 법원 문턱을 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선정기일이 되어 법원에 갈 때도 배심원으로 선정되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배심원석에 앉아 재판을 지켜보면서 나는 사뭇 진지해졌고 적극적인 자세로 재판 진행과정을 꼼꼼히 메모했다.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의 진실공방, 검사와 변호사의 격론, 재판장님의 조율, 이 모든 게 엄청난 무게로 가슴에 얹혔다. 판결이라는 게 참으로 어렵고 막중한 일임을 실감하는 자리였다. 더불어, 배심원이라는 자리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부여되는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판은 거의 1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평의에선 배심원 사이에 심각한 토론이 벌어졌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이었으나 공정하고도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했기에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려 애썼다. 배심원들이 평의를 거쳐 내놓은 의견이 재판장님에 의해 그대로 피고의 유죄와 형량으로 판결되는 순간엔 내가 과연 배심원으로서 책임을 다했나 냉철하게 고민했다. 국민참여재판은 법원 문턱을 허물고 국민을 법집행에 밀착시키는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또한 법집행의 투명성과 공정성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아직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제도가 완벽하게 틀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시행과정에 문제가 도출되기도 하겠지만 법집행의 한 과정으로서 굳건하게 정착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법원으로부터 배심원으로 초대를 받는다면 기꺼이 받아들였으면 싶다. 그리고 법원에 바라는 점이 한 가지 있다면 배심원 선정 이전에 선정자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오리엔테이션을 했으면 싶다. 그렇게 해야 배심원들이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의견을 내놓지 않을까?
최일걸ㆍ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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