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웅순 중부대 교수 |
회초리를 칠 때마다
소스라쳐 울었습니다
하나, 둘, 셋 세면서
아이들은
절명시를 읊었습니다
그리운
초등학교 육학년 선생님
-필자의 '무궁화 회초리'
불혹의 강을 건너고 지천명 산을 넘고 보니 이제금 봄 들녘 같은 선생님의 따스한 마음을 알 것 같다. 1950~60년대만 해도 선생님한테 매를 맞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누구 하나 그에 대해 문제로 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선생이었던 70년대에도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들었다. 아프지 않은 부모님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래도 회초리로라도 사람 되게 해달라고 선생님께 간청했었다. 그때만 해도 부모님은 군사부일체라 하여 오로지 선생님만을 하늘처럼 믿었다.
지금 아이들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나 할까.
회초리를 칠 때마다 하나, 둘, 셋 구령을 붙여가며 맞아야 했던, 구령을 붙이지 않으면 붙이지 않는다고 더 세게 맞아야만 했던 그 옛날 스승님의 회초리. 그때의 선생님은 저만치 물러선 거대한 산이었다. 그윽한 사랑이었고 뜨거운 열정이었다.
선생님한테 매 맞으며 하나, 둘, 셋 세 가면서 눈발 같은 절명시를 남겼던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이제는 그때 나이 손자가 있는 50~60대가 되었다. 사랑과 열정으로 회초리를 들면서 가르쳤던 선생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그렇게 세차게도 후려쳤던 스승님의 사랑과 열정의 무게, 무궁화 회초리 소리와 아이들의 절명가. 창 너머로 매 맞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때의 강과 산, 우리의 어린 어깨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고 사라졌던 그때의 강바람과 산바람. 오늘따라 눈물겹게 생각나는 것은 어인 일인가.
들녘의 신작로를 가로질러 대장간을 지나 공동묘지를 터벅터벅 넘어갔던 초등학교 하굣길.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던 옹달샘, 산딸기, 찔레꽃, 바위, 둑길, 서낭당 고개, 억새들. 영원히 가슴 속에서 머물고 있는 것들은 이렇게 철이 돌아와도 떠나지를 않는다.
비가 세차게 내린다. 오늘 퍼붓는 비처럼 피맺히게 후려쳤던 그때 그 선생님이 보고 싶다.
영원히 내 가슴에나 묻어둘 지난날 우리의 자화상이었던 거짓 같은 '무궁화 회초리'의 슬픈 이 시를 누가 읽어나 줄까. 누가 찾아나 줄까.
절실히 스승이 그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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