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 리콜'의 원작은 SF소설의 대부 필립 K. 딕의 단편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다. 이를 바탕으로 폴 버호벤 감독이 1990년에 내놓은 '토탈 리콜'은 매혹적이었다. 샤론 스톤이 등장해서가 아니다. 컴퓨터그래픽이 막 도입될 당시, 영화가 빚어낸 상상력은 놀라웠고 가슴 셋 달린 여자처럼 대담하고 기괴한 유머,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존재론적 질문은 오롯이 성인 취향이었다.
리메이크에 도전한 렌 와이즈먼 감독은 폴 버호벤 식 성인 취향엔 관심이 없다는 듯 15세 관람가에 농도를 맞춘다. 가슴 셋 달린 여자에겐 브래지어를 채웠다. 원작의 철학적인 상상력은 지워버리고 그 빈자리에 부산스러운 액션 시퀀스를 채워 넣었다.
이야기의 뼈대는 거의 비슷하다. 아름다운 아내 로리(케이트 베킨세일)와 사는 노동자 더글러스 퀘이드(콜린 파렐). 그는 의문의 여인 멜리나(제시카 비엘)와 함께 쫓기는 꿈을 꾼다. 이상한 꿈을 왜 꾸는지 궁금한 그는 가상의 기억을 심어준다는 회사 '리콜'을 방문하는데, 기억을 심는 과정에서 갑자기 군대가 들이닥치고, 퀘이드는 자신의 삶이 위조된 것이며 원래는 비밀요원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한다.
리메이크와 폴 버호벤의 것이 비슷한 점은 여기까지다. 폴 버호벤의 퀘이드가 꿈속에 등장하던 화성에서 진짜 자신을 찾았다면 렌 와이즈먼은 그를 지구에 묶어둔다. 아마 렌 와이즈먼이 가장 공을 들인 설정이 지구 중심을 관통하는 중력열차 '폴'일 듯하다. '토탈 리콜'의 세계는 화학전으로 지구 대부분이 오염된 미래로, 오염으로부터 안전한 영국연합과 지구 반대편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로 나뉘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노동계급은 폴을 타고 영국연합으로 출퇴근한다. 폴 버호벤의 퀘이드가 화성으로의 여행을 꿈꾸었다면 렌 와이즈먼의 퀘이드의 희망은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다.
렌 와이즈먼이 22년 만에 리메이크에 도전한 이유는 엄청나게 발전한 CG의 위력을 보여주자는 데 있는 듯하다. 물론 특수효과와 액션은 20년이란 세월의 간극이 있는 만큼 상당한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블레이드 러너'를 옮겨온 듯한 음울한 미래도시, '스타워즈'의 클론 트루퍼를 연상시키는 안드로이드 군단, '본' 시리즈의 육탄 액션까지 볼거리도 풍성하게 장전했다. 그러나 상상력이 무딘 특수효과와 액션 설계는 갈수록 무덤덤해진다. 주인공 퀘이드는 비디오 게임을 하듯 장소를 옮겨 가며 요란한 싸움만 반복한다.
원작을 경험한 적이 없는 컴퓨터그래픽 세대를 위한 21세기 형 액션 블록버스터라고 할까. 별 생각 없이 머리를 식힐 요량이라면 권할 만하다. 다만 오리지널을 본 관객이라면 아쉽게 느껴지는 면이 많다. 볼 참이라면 오리지널 '토탈 리콜'은 아예 잊는 게 낫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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