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상준 애국지사의 아들 라학(71)씨가 부친의 묘 앞에서 북바치는 감정에 울음을 터뜨렸다<왼쪽 사진>. 이홍식 애국지사의 딸 이정애(80)씨가 선친의 봉분에 술을 올리고 있다. |
“아버지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조국과 광복의 의미가 갚지게 되새겨지길 바랄 뿐이죠.”
제67회 광복절을 맞은 15일 대전국립현충원에는 숙연한 분위기 속에 애국지사 묘역을 찾는 유족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이른시각. 애국지사 제3묘역에서는 한 백발의 노인이 누군가의 묘비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몇 번을 헤맨끝에 라상준 애국지사의 묘비 앞에 선 노인은 손수건으로 연신 눈가를 훔치기 시작했다. 아들인 라학(71)씨다. 라상준 애국지사는 서산에서 장날 태극기를 들고 전단지를 뿌리며 일제 지배의 부당함을 알리다 순사들에게 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다. 라 지사는 출소 후 일본 경찰국을 습격하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에 소속돼 활동하다 숨졌고, 그의 시신은 국내로 돌아오지 못했다. 라 지사의 시신이 국내에 돌아온 것은 같이 활동했던 단원이 십수년 후 만주에서 라 지사를 임시로 가묘해 둔 곳을 찾아낸 뒤였다. 라 지사는 그때서야 그가 그토록 바랬던 독립된 조국의 산하에 묻힐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라씨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라씨는 대화내내 벅차오른 감정을 달래기 어려운 듯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라씨는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아주 어릴적 큰 형님에게 엎혀 장항역에서 떠나는 아버지를 바라봤던 것 뿐”이라며 “너무 어릴적이라 아버지의 얼굴 조차 잘 기억나지 않아 슬프다”고 말했다. 또 그는 “지금의 세대가 광복절에 놀이동산 등으로 놀러가기 바쁜 모습을 보고있자면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인근 묘역에선 노 부부가 묘비에 술잔을 올리고 있었다. 이홍식 애국지사의 둘째 딸 이정애(80)씨 부부다. 이씨 부부는 고창에서 세시간 여를 달려와 부친의 묘 앞에 섰다.
이홍식 지사는 경북 하동에서 활동한 독립군이다. 이 지사는 활동 중에 체포돼 오랜 세월을 대구형무소에서 보낸 탓에 광복 후 중풍과 각종 고문에 따른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통에 신음하며 보냈다. 이씨 부부는 “어려운 생활에도 더 어려운 주위를 돕고자 나섰던 분이었다”며 “살아생전에 더 잘 모셨어야 했다”고 회한을 내비쳤다.
이씨 부부는 바로 옆에 봉안된 신만중 지사의 묘에도 술을 따라 올렸다. 이씨는 “부친과 같이 활동했던 분이지만 자손이 없어 올 때마다 같이 제를 올리고 간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묘역에서는 10여명의 일가족이 모여 술잔을 올리고 있었다.
일제에 저항하고자 학생운동을 펼친 정병소 애국지사의 유족들이다. 딸인 채연숙(83)씨는 “고집스런 성격은 애국활동에서도 잘 두드러졌다”며 “고문과 징역 이후에도 부친은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만을 바라셨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광복의 갚진 의미를 생각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며 “선열들의 희생이 제대로 기억되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강우성 기자 khaih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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