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우영 작가·대전중구문학회 사무국장 |
그 당시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훗날 차츰 나이가 들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돈이나 권력을 좇으려면 다리 한 쪽을 들고 오줌을 누는 개처럼 살라는 뜻이로구나… !”
그 시절 우연히 서대문 인왕산을 올랐다. 맨 꼭대기 큰 바위덩이에 사람 발자국이 깊게 파인 '감투바위'를 보고 멈칫했다. 한 장 가까이 되는 그 단단한 바위에 사람의 발로 움푹움푹 발자국을 남기려면 도대체 얼마나 걸렸을까? 최소한 수 십 명이 수 십 년 이상을 부단히 오르내렸을 터다. 그 후 어느 날. 종로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황학정 활터를 끼고 올라 배화여자대학 뒷동산을 걷는데 그 숲 속에 또 하나의 '감투바위'가 있는 게 아닌가? 바위 꼭대기 동쪽 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만한 자리가 움푹 파인채로 말이다. 그 자리에 앉아 찬연하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 십 년 동안 앉았다 갔기에 이처럼 바위가 움푹 파였을까!
이처럼 하찮은 바위 하나에도 정성과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욕심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피나는 연마를 통한 목표의 성취물이라는 걸 새삼 느꼈었다.
또 하나 '월남 야담'에 나오는 감투 이야기. 감투 한 번 써 보는 것이 평생소원인 사람이 있었다. 그러던 터에 높은 곳에서 감투가 하나 있는데 써 보라며 연락이 왔다. 그는 당장 옷을 잘하는 사람한테 찾아가서 '이제 감투를 쓰게 되었으니 내 지위에 맞는 새 옷을 맞춰 입어야 겠다'고 했다. 주인은 신중하게 그의 치수를 다 잰 다음에 물었다. “그럼 한 가지 묻는데요. 선생님은 벼슬을 하신지 얼마나 됩니까?”
벼락감투를 썼다고 대답하기가 멋쩍고, 또 한편으로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게 여간 의아스럽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야 옷을 제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 처음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신 분은 위엄을 부려 잔뜩 고개를 쳐들고 턱도 치켜 올리고 가슴은 활짝 내밀고 위풍이 당당합니다. 그래서 도포의 앞자락이 뒤보다 길게 만듭니다. 그러다가 한 두 해가 지나 맡은 일에 열중하고 조금씩 이력이 나고 사리에도 밝아지게 되면 앞으로 다가올 일을 걱정하고 백성을 위해 뭣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도포의 앞단과 뒤의 길이가 같도록 재단해야 합니다. 또 한 두 해가 지나면 책임감과 격무에 시달려 오만스러움도 가시고 겸손하게 되어 자연 허리가 굽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도포의 뒤가 앞보다 길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옷이 선생님에게 어울리게 만들려면 벼슬경력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문학과 젊음, 술과 여자, 자살의 유혹, 장발에 높은 구두굽, 2년여의 전국방랑 삼천리 무전여행 등 가슴 뜨겁던 더벅머리 스무살 시절의 방황을 끝내고 나이 삼 십이 넘어 직장을 잡았다. 아침에 뜨는 찬연한 해를 보고 밤에 뜨는 초롱한 별빛을 보며 세월을 넘기다보니 벌써 자녀 셋을 두고 흰머리 희끗한 반 백의 나이 50대 중년남자로 여기 이렇게 서서 욕심없이 허허로이 바람처럼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요즘 국민의 세금으로 어질고 착하다 싶어 인물을 가려 뽑아논 선량(選良)들이 각종 '감투싸움'으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어 답답하기 그지없다. 어린시절 시골에서 돼지를 잡을 때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서 돼지털을 손질하고, 내장을 씻고, 고기를 고르는 중 '오소리감투'를 어렵게 찾아낸다. 오소리감투는 찾기도 힘들고 숨어버리는 습성이 있는 돼지의 위장이다. 겉모습도 두툼한 빵떡모자 감투와 흡사해 버릴게 하나도 없는 귀한 고기다. 능력이 부족하고 경륜도 풍부하지 못한 반식대신(伴食大臣)감투를 쓴 자들이여! 소슬한 초가을 바람결에 하나도 버릴게 없는 '오소리감투'의 정신으로 '한국형 리더십을 말한다'의 일본 인터넷 기업의 대부 손정의 소프트방크 회장의 책 속에 풍덩 빠져보시라!
“눈 앞을 보기 때문에 멀미를 느끼게 된다. 몇 백 미터 앞을 보라. 바다는 기름을 제거한 것처럼 평온하다. 나는 그런 장소에 서서 오늘을 지켜보고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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