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기 편집부국장 |
1998년에 밀려온 IMF 경제위기는 국내 금융시스템의 대변혁을 가져왔다. 부실하다고 판정받은 일부 지방은행들은 문을 닫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당시 DJ정부는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차원에서 사정의 칼을 꺼내들어 부실한 지방은행을 정리했다. 충청권의 지방은행이었던 충청은행과 충북은행을 비롯해 강원은행, 경기은행은 그 때 간판을 내렸다.
반면 전북은행, 광주은행, 대구은행, 부산은행, 경남은행은 지금까지 간판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퇴출은행 선정에 공정한 잣대를 들이댔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정치기반이 취약한 충청과 중부권의 지방은행이 퇴출 운명을 맞이했다.
퇴출은 경영을 부실하게 한 은행의 책임이 크지만 정부가 제대로 가려냈느냐는 공정성 여부도 시비거리다. 각종 국책사업 선정이 정치적 결정에 휘둘리는 모습이 자주 비춰지고 요즘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국내 일부 저축은행들의 금융당국 퇴출저지를 위한 정치권 로비행각 등을 보면 당시 퇴출대상 선정 공정성 여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결국 대전과 충남을 기반으로 한 충청은행은 1998년 6월 하나은행에 부채외 자산인수조건으로 흡수합병됐고 충북은행은 1999년 4월 지금의 신한은행과 합쳐진 조흥은행에 합병됐다.
지방은행의 역사적 부침속에 최근들어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지방은행 설립의 키를 갖고 있는 충청주민들의 생각은 일단 긍정적이다. 대전발전연구원이 대전시와 충남북,세종시 주민 583명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조사한 결과 79%가 ‘지방은행 설립이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조사대상의 47.6%가 ‘대전시와 충남도, 충북도, 세종시가 통합해 1개의 단일 지방은행’으로 설립해야 된다고 응답했다.
지방은행 설립문제가 12월 대선을 앞둔 요즘 논의가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지방은행 설립은 정치권과 중앙정부의 정책결정 및 법적, 제도적 지원이 뒤따라야 하는 부분이어서 대선후보들의 공약화를 통한 실현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그런 까닭에 현 시점에서 지역민의 뜻을 모아 대선후보들의 공약에 포함시키는 노력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답답함을 주고 있다. 충청권 대선공약 사항을 조율하기 위해 대전과 충남ㆍ북, 세종시의 충청권 4개 시ㆍ도지사가 13일 충청권행정협의회를 개최했으나 지방은행 설립문제는 채택하지 못했다. 시도지사간 견해차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선공약 실현이라는 호기를 놓칠 우려를 낳고 있다.
주도권을 둘러싼 시도간 신경전이랄 수 밖에 없다. 광역경제권으로 개편되는 추세에서 충북 일부에서 나오는 단독설립안도 충청권 공동발전에 득이 될 지 따져봐야 한다. 허가권을 쥔 중앙정부에 지역여론 분열로 비춰져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 허가를 유보하는 구실만 줄 수 있다.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 논의에 지방은행 역할을 자임해 온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지방은행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민들의 준엄한 꾸지람이기 때문이다.
지방은행 역할도 제대로 못하면서 지방정부 금고계약 때마다 우선권을 주장한다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대전시 지방정부의 금고운영권을 오랫동안 운영해 오고 있는 하나은행의 일부 수뇌부는 대전시금고를 맡지 못한다면 충청본부 산하의 그 많은 대전시내 지점과 인력이 필요치 않다며 은근 슬쩍 지방정부를 압박(?)해 왔다. 이제 주민들에겐 그런 행태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 하나은행은 그나마 주민신뢰를 얻을 때 독립적인 지방은행 설립 대안으로 지방은행을 별도 자회사로 설립해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전의 중심지인 둔산동 대전시청사 앞에는 지방은행과 지역대학 치과병원이 아닌 타 지방은행과 타 지방대 치과병원의 간판만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이게 지역의 현주소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