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 대전대 한의학과 교수 |
우리는 예로부터 좋으나 싫으나 '죽겠다'라는 표현을 밥 먹듯이 하는 민족이었다. 즐겨 듣던 말이고 과장의 표현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 말을 듣고 있노라면 왠지 부정적인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내가 근무하는 진료실은 한 가지 원칙이 있다. 가능하면 부정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료를 받던 환자분이 '죽겠다', '미치겠다' 등의 부정적인 말을 하면 만원의 벌금을 내게 된다. 지금까지 벌금을 낸 환자분들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인지 죽겠다라는 표현을 하려다가도 살겠다로 바꾸는 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4~5년 전 쯤의 일로 기억된다. 중풍을 앓은 지 2년이 경과된 대구에서 오셨던 여성분 이야기다. 치료를 위해 대학병원 등 인근 여러 군데 의료기관을 다녔고, 어지럼이 심하고 양측에서 부축을 해야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증상이 심한 환자였다. 보호자와 함께 처음 내원했을 때 마지막으로 이곳에 온 것이니 치료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것은 회복에 대한 간절함이었으리라. 입원을 권유했으나 환자가 입원생활에 지쳐 대구에서 통원치료를 하겠다고 한다. 어찌됐든지 간에 환자나 보호자의 열심이 특심이다.
한 번, 두 번 통원 치료를 다니는 그 환자에게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 환자를 진료하며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낫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면 치료를 잘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능력이 없는 것인지 한번쯤 고민을 하다가도, '아니야, 잘 될거야' 라고 바로 마음을 바꾸어 놓는다. 2주가 지났을 때에도 환자의 얼굴에서 낫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역력하다.
“오늘은 어떠세요?”
“그대로예요. 안 나으려나 봐요.”
“그래요?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조금 나았어요라고 해보세요. 그러면 기분이 훨씬 좋아질 거예요.”
얼마를 지났을까. 그날 아침에도 그 환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오늘은 어떠세요?”
“조금 나아요.”
“가르친 보람이 있네요. 대답하신대로 아마 곧 나을 겁니다.”
“선생님, 진짜로 조금 나아요. 선생님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어느날부터 인가 그 환자분은 한쪽으로 부축만 해도 걷을 수 있을 정도의 호전된 상태로 변해있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 혼자 걸어오기 시작하더니만 급기야는 혼자 선글라스를 쓰고 결혼 할 새 신부인양 이쁘게 차려입은 환자분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선생님,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조금 나아요라는 말을 하라고 할 때부터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설립자인 고 임달규 원장은 대전에서 아니 한국에서 저명했던 한의사로 알려져 있다.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그 분께 치료를 받았던 환자나 보호자 중에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을 통해 그분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곤 한다.
'내가 다 낫게 해 줄게.' 그분은 항상 긍정적으로 표현하셨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며 치료를 받는 분들에게 큰 희망이 됐다고 한다. 치료율이 다른 어떤 곳 보다도 월등히 높았음은 당연한 결과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분은 학교의 자랑이며, 한의사로서의 귀감이다.
얼마 전 전세계를 강타한 론다번의 '시크릿'과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을 기억한다. 한국에서도 한참동안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상상하고 느껴라. 그러면 삶에서 그 장면을 돌려받을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든 그렇게 될 수 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든 그 일을 할 수 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든 그것을 가질 수 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에 달려 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말의 중요성과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한 성경의 한 구절이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메달 행진과 국가대표 청년들의 선전으로 대한민국은 흥분과 감격을 경험했다. 만약 올림픽이 없었다면 무더위와 열대야를 무엇으로 이겨냈을까. 방송에서 연일 되풀이 되는 아나운서의 강력하고 간절한 외침이 뇌리에 맴돈다.
“대한민국,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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