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대규 광복회 대전 서구지회장 |
나는 올해로 7년째 광복절을 전후해 태극기를 보급하는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나 자신 3·1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유공자이신 조부 한상철 옹의 후손으로서 이렇게나마 무언가 독립유공자들의 뜻을 기리는 일을 해야겠다는 소신으로 행하는 작은 봉사다. 동시에 우리 보훈현실을 돌아본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독립유공자 뿐 아니라 6·25참전용사, 상이군경, 전몰미망인 등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 독립유공자의 경우는 다른 보훈대상자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우리가 간과하지는 않나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은 비밀리에 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실제 학계에서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원을 300여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독립유공자는 1만2800명에 불과하다.
1920년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청산리 대첩을 예로 들어보자. 청산리 전투에 참여한 독립군은 비전투원을 포함, 약 2800여명으로 5만여 명의 일본군에 맞서 3300명을 사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중 오늘날 이름이 확인된 독립군은 100여명에 불과하다. 이러한 예를 근거로 어림잡아 추산해도 독립운동에 참여한 대다수의 무명 유공자들은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자신은 물론 후손조차도 예우를 못받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안타깝다.
나는 우리 정부가 이렇듯 이름없이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몸바친 분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선은 지금이라도 기록과 추적을 통해 적극적으로 독립유공자를 찾아내고 예우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으로도 못다 밝히는 독립유공자들을 위한 기념사업이라도 해야 한다는 소신이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독립유공자분들이 세상을 떠나셨고 이제 몇 분 남아계시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 후손들에게 관심을 갖고 예우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단적인 예로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고국으로 돌아와 귀화할 경우 후손 1명에게 정착금만 지급된다. 탈북자에게는 정착금 외에 임대아파트, 취업알선, 교육비, 무상진료, 정착도우미 지원 등의 혜택이 주어지는 것에 비하면 우리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가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다.
얼마 전 언론에 국가보훈처 예산이 보도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보훈예산은 전체 예산의 1.7%에 불과했다. 우리처럼 일제강점기를 거치지 않았고 6·25와 같이 자국에서 전쟁도 없었던 미국은 전체 예산의 3.7%, 호주는 3.3%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보훈현실이 얼마나 열악한지 미루어볼 수 있다.
이제 곧 광복절 67주년이다. 쓸쓸한 광복회 사무실을 지키시던 신정숙 여사가 떠오른다. 여성의 몸으로 광복군으로 김구 선생의 곁을 지키기도 했던 분이었지만 가난 속에서 영세민 아파트에서 노후를 보내시다 15년 전 세상을 떠나셨다. 이덕산 회장님도 떠오른다. 모두 젊음을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셨지만 제대로 예우를 받지는 못하신 분들이다.
이번 광복절에도 나는 뜻있는 분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조국을 위해 몸바친 독립유공자 분들과 무명 용사 분들, 특히 이름 한 자 남기지도 못한 채 호국혼을 불사르신 무명용사 분들을 가슴에 새기며 태극기 보급을 위한 봉사에 나설 것이다. 아울러 정부 차원에서도 갈수록 잊혀지고 소홀해지는 독립유공자와 후손에 대한 처우개선과 기념사업에 전향적으로 나서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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