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난순 교열팀장 |
그해 겨울, 난 드디어 담배를 제조하기에 이르렀다. 뒤뜰에 있는 마른 쑥을 뜯어 종이에 말아 제법 모양새가 갖춰진 '궐련'을 피웠다. 향기롭고 구수했다. 마른 쑥과 종이가 타면서 내는 향과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연기를 감상하며 난 어른이 된듯 했다.
담배는 왜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을까.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럼에도 호기심이든, 습관이든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옹호한 리처드 클라인은 담배가 건강에 유익하지 않으므로 칸트적 의미에서 숭고하다고 역설했다. 담배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동시에 미묘하고도 멋진 것에 의해 스릴을 느낀다는 것이다.
담배에 대한 판타지를 불러일으킨다 해서 비난받지만, 옛사람들에게 아직도 로맨틱한 영화의 주인공으로 사랑받는 이가 있다. 험프리 보가트는 담배를 참 근사하게 피운다. 보가트가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엄지와 검지에 낀 담배를 길게 빨아서 내뿜는 모습이라니. 그를 보면서 남자들은 그 멋진 포즈를 따라하기에 바빴을 테다.
인간과 동물을 유일하게 구별해주는 흡연은 특별하다. 콜럼버스가 유럽으로 전파한 담배는 그 오묘한 향과 연기로 인해 순식간에 인간의 삶에 파고들었다. 이 식물을 피우면 위안과 긴장의 이완,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광해군 시절로 기록돼 있다. 당시 담배는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돼 필수품으로 대접받았다. 남녀노소와 귀천을 막론하고 담배를 애용했다.
이렇듯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담배에 있어서도 언제부턴가 남녀구별이 적용됐다. 남근을 상징하는 담배를 여성들이 피우는 것은 거세의 상징으로, 남성의 권력을 도용하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여성흡연은 정숙함에 위배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이고 건방지다고 보이기 때문에 '조신한 여성'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도덕주의자들이 여성흡연에 대해 엄격한 억압을 가할수록 여성들은 담배를 더 많이 피운다. 전직 기자였던 서명숙의 『여성흡연 잔혹사』는 여성흡연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준다. 1979년 시국사건으로 끌려간 대학생 서명숙의 가방에서 담배와 라이터가 나오자, 담당형사는 그녀의 뺨을 때리면서 “담배나 피워대는 갈보같은 년”이라는 폭언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렇다. 담배는 술집 여자나 과부에게나 허용되는 것이었다.
흡연에 대한 많은 유익과 쾌락, 철학적·문화적 역사 속에서 유해성에도 불구하고 담배는 흡연자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는 건강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삶을 즐기는 방식' 또한 중요하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깃 올린 코트와 깔끔하게 벗어넘긴 머리에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담배를 물고 있는 카뮈의 모습은 얼마나 댄디한가.
그러나 요즘 흡연자들은 흡사 죄인 취급을 받고있다. 정부의 강력한 금연정책과 전문가들의 담배에 대한 유해성 발언으로 그들은 설자리를 잃고 있다. 비흡연자들의 따가운 시선도 만만찮다. 담배를 꼬나문 멋진 '말보로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 상황에서 우스운 것은 정부정책이다. 담배를 제조·판매해 국민들을 담배중독에 빠뜨려놓고 그걸 통해 어마어마한 세금을 거둬들이니 말이다. 그러면서 담배는 해롭다며 흡연자들을 탓하고 있다.
1990년대 초 신문사에 입사한 첫날, 기겁을 했다. 편집국 사무실은 마치 안개낀 부두처럼 담배연기로 자욱했다. 난 감기에 걸릴때마다 폐렴까지 동반되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담배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고약한 냄새와 기침을 유발한다. 또한 창조의 원천이기도 하다. 파이프를 물지 않은 프로이트를 상상하기 어려운 이유다. 담배연기를 맡지 않을 권리, 담배를 피울 권리.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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