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화]그냥 들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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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그냥 들은 이야기

[중도시감]김의화 편집부장

  • 승인 2012-07-26 14:07
  • 신문게재 2012-07-27 21면
  • 김의화 편집부장김의화 편집부장
▲ 김의화 편집부장
▲ 김의화 편집부장
서울을 제외한 다른 곳은 '지방'에 불과하다.

강남 압구정동에서 '지방도시'로 이사 온 사모님은 이웃이 된 지방민들에게 '사업이 망해서 낙향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그 사모님이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시세는 5억~6억원을 호가한다.

열심히 살아왔을, 현재의 처지가 예전만 못해서 고백이기 보다는 푸념이 짙게 묻어나는 사모님의 말을 들으면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 산다'는 옛 말이 생각난다. 부자동네 아파트에 가면 서민 아파트에 없는 것들이 많다. 그 가운데 '가사도우미 대기중' 이라는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어있고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음식물 쓰레기통에는 호텔 뷔페에서나 잠시 만나볼 수 있는 열대과일이 온전하게 버려져 있다. 간병인은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가사도우미는 아무나 고용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유난히 평등의식이 강한 민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류의 비교만능, 처지비관, 상류계층 불인정, 현실도피 안달 증후군 등등. 차등은 어느 사회든 불가피한 일이어서 감내할 수 있지만 차별은 정의롭지 않은데다 참아야 할 이유도 없다.

차별이 심하다는 인식과 실제 현실이 그러할수록 행복은 멀리 있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사회연구' 학술지에 실린 이내찬 교수(한성대)의 'OECD국가 삶의 질 구조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삶의 질과 연관된 19개 지표의 가중 합계인 '행복지수'를 구해 비교한 결과 한국은 10점 만점에 4.20으로 OECD 34개 국가중 32위로 나타났다.

'행복지수'를 구성하는 19개 세부 지표에는 OECD가 지난해 회원국들의 '보다 나은 삶 지수(BLI)' 산출에 사용한 1인당 방 수, 가처분 소득, 고용률, 살해율, 상해율, 사회네트워크 안정성 등 12개 지표에 경제적 안정, 정부에 대한 신뢰, 외부인에 대한 관용, 성차별 등 '사회자본' 관련 지표와 지니계수, 빈곤율 등 부(富)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 자연 환경적 지속가능성 지표가 포함돼 있다.

주관적 건강상태(32위), 필수시설을 못 갖춘 가구 비율(31위), 소수그룹에 대한 관대성(28위), 빈곤율(28위), 가처분소득(27위), 살해율(26위), 국가기관 신뢰도(26위), 1인당 방 수(25위), 고용률(21위), 소득분배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21위) 등이 모두 하위권을 맴돌았다.

주목할 것은 우리나라가 환경ㆍ생태유지 가능성과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접촉빈도 등이 반영된 사회네트워크 안정성 부문에서 최하위인 34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국민이 만족스런 삶을 영위하려면 충분한 소득을 얻거나 안정된 고용도 중요하지만 부의 편중이나 극빈자 수를 줄여 사회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읽힌다.

여러 문제 가운데 양극화 현상이 삶의 행복지수를 크게 떨어뜨리고, 꼭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빈곤층의 기회의 차별, 불공정성, 정의롭지 않은 분배에 분노하고 있다면 사회 안전망 구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학계에서도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성취감 보다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크고 깊은 내상을 입힌다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오래된 '고전'이지만 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가세함은 물론이다.

대저택에 살고 고급 외제승용차를 몰며 승마, 골프, 호화 요트타기를 즐기는 드라마 속 주인공의 일상을 부러워하면서도 질투와 함께 '부의 축적과정'에 대해 시선이 곱지 않다.

이 같은 이중적인 태도는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천민자본주의 만연과 더 큰 부를 쌓기 위해 국가적 시스템이 봉사하고 투기적 방식을 비롯한 갖은 비리를 통해 이뤄졌다는 평민들의 피해의식(?)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경제 이데올로기로서 '신 자유주의'가 기승을 떨었던 것도 한 요인이다. 열심히 일해도 현실이 나아지지 않으면 내가 못나고 무능해서이며, 실패자(루저)일 뿐, 시장과 경쟁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정의롭게 열려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낙향한 사모님의 푸념을 들으며 2012년의 대한민국, 경제대국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그 씁쓸함을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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