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의 8할은 '배우들을 보는 맛'이다. 김윤석 김혜수의 카리스마, 톡톡 튀는 전지현, '양아치' 이정재, 김해숙의 노련함, 김수현의 순정, 오달수의 웃음, 거기에 임달화, 증국상, 이진제 등 중화권 스타들까지. 이 거물급 배우들을 한 스크린에서 보는 게 어디 흔한 일인가. 게다가 이 배우들은 누구 하나 욕심 부리지 않고 각자가 맡은 캐릭터를 충실하게 그려낸다.
꽉 짜인 스토리는 '구라꾼' 최동훈 작품답다. 액션도 시원하다. '도둑들'은 마카오 카지노에 보관된 희대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는 도둑들의 이야기다. 마카오 박의 제안에 한국 도둑 다섯, 중국 도둑 넷이 합류한다.
마카오 박은 마카오 카지노에서 하룻밤에 무려 88억 원을 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마카오 박 김윤석은 스타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드라마를 리드하면서, 후반부엔 박진감 넘치는 와이어액션도 선보인다. 팹시 역의 김혜수는 말수를 줄였다. 이름이 왜 '팹시'냐는 질문에 “톡 쏘는 게 성격이 'ㅈ'같나보지”하고 거침없이 쏘아붙이는 카리스마는 여전하지만, 멜로라인에선 '애잔 가련'하다.
이정재는 '가지고 싶다고 마음먹으면 무슨 일이든 저지를' 것 같은 비열하고 뻔뻔한 뽀빠이를 연기한다. 국민 엄마 김해숙은 잠시 잊는 게 좋다. '씹던껌'은 '앤드류' 오달수와 함께 웃음을 책임진다. 뒤늦게 찾아온 사랑에 애달파하는 그녀다. 순정파 '잠파노'역의 김수현은 대선배들 사이에서도 꿀리지 않는 당찬 모습으로 자신의 매력을 과시한다.
줄에 매달려 “예~”하며 공중곡예를 펼치는 줄타기 전문도둑 '예니콜'역의 전지현은 '도둑들'의 최대 수혜자다. 늘씬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 펼치는 와이어액션이며, 입에 딱 붙은 듯한 차진 욕설 등등 그야말로 '매력덩어리'다.
최동훈 감독은 이 배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전작 '범죄의 재구성'의 사건, '타짜'의 정서, '전우치'의 액션을 결합해 '1급 오락영화'로 뽑아냈다. 그런데 이 영화 이상하다. 대단한 도둑들을 모아놓고도 정작 도둑질에는 관심이 없다. 작전이 시작되면 씩씩하던 서사의 활력이 외려 무뎌진다. '도둑들'은 화려한 캐스팅과 도둑질이라는 설정으로 스티븐 소더버그의 '오션스 일레븐'과 비교돼왔다. 이 지점에서 그 때마다 최동훈 감독이 왜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했는지 알 것 같다.
도둑들은 마카오 박의 제안에 동참했으면서도 한결같이 “마카오 박을 못 믿겠다”고 입을 모은다. '오션스 일레븐'이 똘똘 뭉쳐 돈을 훔쳐내는 낭만적 공동체라면 '도둑들'은 누가 누구의 뒤통수를 치느냐 하는 음모와 배신이란 긴장감이 영화를 이끄는 동력이다. '오션스 일레븐'이 금고를 터는 데 집중한다면, '도둑들'의 도둑질은 '낚시'일 뿐이다. 숨은 인물을 끌어내기 위한. 카지노에서 나와 부산과 홍콩을 오가면서 드라마의 층은 두터워지고 액션의 강도는 더해진다. 도둑질 뒤에 또 다른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
최동훈 감독은 홍콩누아르 같은 홍콩적인 맛과 할리우드적인 맛, 거기에 사랑과 우정과 배신, 그리고 협잡, 또 액션과 코미디 등 양념을 모두 동원해 세련된 맛의 재미를 완성했다. 중간 중간 지루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올 여름을 책임질 영화로 손색이 없다. 간만에 눈이 호강했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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