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찬]이발소 그림 - 서민들의 꿈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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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찬]이발소 그림 - 서민들의 꿈과 희망

우리문화를 아시나요

  • 승인 2012-07-24 14:22
  • 신문게재 2012-07-25 21면
  •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요즈음 장마철이어서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분다. 질척거리기도 하고 불쾌지수도 높지만 긴 가뭄 끝에 오는 비바람이어서 왠지 반갑기만 하다. 햇빛을 볼 수 없어 다소 우울하기는 하지만 어쩌다가 화장실에 들러 앞에 걸린 경구를 읽거나 작은 액자 속의 예쁜 그림을 보면 우울했던 기분이 다소 풀리면서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우리들의 생활이 그랬다. 그것이 그렇게 유명한 화가나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할지라도 좋았다. 달력에 있는 그림이거나 잡지책에 나온 글씨라도 정성껏 구해서 벽에 붙이거나 걸어 놓고 어찌보면 값비싼 그림이나 글씨보다 더 소중하게 다루었다. 이 그림이나 글씨에는 평소 우리가 꿈꿔오던 꿈과 희망이 담겨 있었다. 부자가 되거나 가정의 화목을 비는 그림이나 글씨들이었다. 가장 많았던 그림과 글씨들은 어미돼지와 닭이 아홉 마리의 새끼돼지나 많은 병아리와 함께 있는 그림이거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나 수복강령(壽福康), 부귀영화(富貴榮華)' 등이었다. 종교를 가진 가정에서는 종교적인 그림들을 붙이거나 걸어놓고 가정의 행복과 자손 번창의 염원을 담곤하였다.

각 가정에는 비교적 작은 그림들이 있었지만 이발소 그림은 달랐다. 이발소는 대개가 시골의 면소재지나 읍내에 있었고, 비교적 좋은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다. 즉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는 약방이나 상점등과 함께 몇안되는 곳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로서는 제법 잘 꾸며져 있어서 사랑방 역할도 하였다. 이발소에 들어서면 제일먼저 눈에 띄는 것이 거울 위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액자였다. 다름아닌 이발소 그림이었다. 주로 아홉 마리의 새끼돼지가 누워있는 커다란 어미돼지의 젖을 파고 있는 그림과 우거진 숲속에서 물보라를 튀기며 돌아가는 물레방아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이 그림들을 보면서 어미돼지의 풍요로운 품처럼 우리의 생활도 풍요롭기를 염원하곤 하였다. 어떤이들은 가치없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이발소그림 같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이발소 그림들은 이발소가 개업할 때 번창하기를 기원하면서 개인이나 단체의 이름을 새겨 선물한 것들이었다. 모두가 잘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어 이보다 더 귀하고 값진 그림은 없었다.

지금은 화려한 네온사인이나 조명등으로 가득차 있어서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 되었지만, 아무리 화려해도 그 이발소 그림이 그리운 것은 항상 희망의 꿈을 꾸게 해주었고 푸근한 정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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