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기 대전대 교수ㆍ정치학 |
다른 사람의 저작물의 일부나 전부를 아무런 인용이나 출처를 밝히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것인 것처럼 따다 쓰는 행위가 표절이다. 사실 불과 10여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표절을 크게 비난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표절을 일부 관행으로 묵인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소위 지적재산권이 널리 인정되기 시작하면서 표절을 절도에 해당하는 범죄로 간주하게 되었다. 따라서 요즘은 학계의 윤리의식이 강조되고 또 지적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면서 표절은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윤리적으로 표절을 용납하지도 않고 또 표절을 한 사람을 비난하기도 지탄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이 직접 발표한 저작물에 까지 표절을 엄격히 적용하여, 소위 '자기표절' 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아무리 자신이 스스로 발표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제 명확한 출처와 인용을 밝히라는 것이다.
그리고 몇 해 전부터 대학에서 실시하는 강의에서도 다른 사람의 논문이나 자료를 저자의 동의 없이 학습용으로 복사해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의 수업을 위해 다른 학자의 논문이나 자료를 복사해서 사용하는 것은 관행으로 허용되던 것이었으나 저작권이 강화되면서 이 조차도 이제 더 이상 허용되지 않게 된 것이다. 소위 불법적인 표절이나 무단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대학생들이 제출하는 과제에서 다른 사람의 저적물을 무단 발췌하거나 표절한 것이 발견되면 0점 처리하는 교수가 늘어나는 것도 저작권과 연구윤리를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가르치기 위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작물에 대한 권리나 연구윤리가 이렇게 강화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동안 아무렇지 않게 남의 연구결과나 자료를 무단으로 활용하거나 표절하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연구윤리의 강화는 단순히 남의 것을 도용하는 범죄라는 인식에서 표절을 허용하지 않는 의미만이 아니다. 이것은 새롭고 독창적인 연구를 촉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에서 표절과 관련해서 매우 관대한 부분이 있다. 바로 정부에서 사교육을 억제하고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몇 해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EBS 방송 및 교재의 내용이나 문제를 수능에 연계하는 것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공교육을 강화하고 사교육을 억제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방법으로 EBS 교재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동의한다.
그러나 현장 고등학교 교사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판단할 때, 현재 EBS 교재의 활용 방식은 '연계'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으로 인해 사실상 '연계'의 수준을 넘어 '표절'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EBS 교재에서 자료와 지문을 활용하고 출제 의도를 벗어나지 않는 방향에서 이를 기초로 문항을 개발하는 것을 '연계'라고 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항을 극히 일부 변형하거나 거의 유사한 문항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하는 것은 엄격히 말하면 '표절'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연계'와 '표절'의 구분이 모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연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현재 학계나 사회에서 통용되는 표절의 기준을 현재 시행하고 있는 EBS 수능 연계라는 것에 적용하면 다소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한편에서 저작물에 대한 지적 재산권과 연구 윤리를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에서 특정한 경우에 한해 그것을 대폭 허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다소 개인적인 견해일 수도 있지만 표절 시비가 있을 수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표절을 하지 말라고 교육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와 관련해서 무엇이 '연계'이고 무엇이 '표절'인지 보다 분명한 구분과 한계 제시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인식은 아마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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