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소납품업체 울린 백지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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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중소납품업체 울린 백지계약서

  • 승인 2012-07-17 19:03
  • 신문게재 2012-07-18 21면
대형유통업체와 중소납품업체 관계에 드리워진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또 나왔다. 중소납품업체를 상대로 부당하게 백지계약서를 쓴 대형유통업체들이 덜미가 잡혔다. 공정거래위원회 실태 조사에서 밝혀진 3개 백화점, 3개 대형마트 등이 쓴 불완전 계약서는 공공연한 관행적 횡포다. 원칙도 규정도 무시하고 전적으로 우월적 지위에서 행사된 것이다.

아무리 독과점 성격이 짙은 유통업이라지만 이 정도라니 실망스럽다. 판매수수료율, 대금지급 조건 등 핵심 계약조건을 공란으로 남기는 수법은 계약을 일방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에 다를 바 없다. 고의로 알맹이 항목을 뺀 계약서 작성은 엄연히 법을 어긴 것이다. 판매수수료, 판촉행사 등의 내용을 뺀 백지계약서는 그 실태를 짐작하게 한다.

핵심 사항이 텅 빈 백지계약서에 당한 중소납품업자들은 냉가슴을 앓을 수밖에 없다. 양자 사이의 기본거래계약서와 부속합의서의 적법성 여부를 가리기 전에 심각하게 반성하고 시정해야 하겠다. 지난 일이지만 약자인 납품업체를 통해 경쟁 백화점 영업기밀까지 캐내려다 들통 나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면 서면 계약을 미준수하는 이 같은 행위부터 다스려야 하겠다.

적발된 사례들은 상품대금 지급 조건, 판촉사원수, 매장 위치, 계약기간 등이 누락돼 효력이 의심되는 계약에 불과하다. 내·외국 브랜드에 따라 상이한 계약서도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 국내 브랜드와 달리 외국 브랜드에는 핵심 내용이 적힌 계약서를 쓰는 이중적 행태는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백지계약서는 물품 대금 감액, 판매촉진 비용 전가, 인력 파견 요구 등 납품업자에 과도한 부담을 전가하는 데 사용돼 왔다. 매장 위치를 옮기거나 인테리어를 바꿀 때 돈을 요구하거나 온갖 구실로 제품값의 절반을 떼어가는 사례도 있다. 간담회를 통해 대형유통업체의 행태에 추가로 시정할 부분은 없는지 파악해 횡포를 막아야 한다.

사업의 상대를 그저 ‘갑’과 ‘을’의 관계로 보고 동업자로 여기지 않으니 이 지경이 됐다. 배타적 거래 강요, 보복 조치 등 여타의 모든 불공정 거래행위까지 근절하기 바란다. 납품업체 및 입점업체에 군림하고 강요할 뿐인 형편없는 대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을 무색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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