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
한때는 어느 누군가와 사랑하고 이별해 이곳에 묻힌 영혼들. 이 나라를 목숨보다 사랑했던 위대한 분들의 자리에 이제는 찾아오는 후손이 끊겨 낡은 조화가 꽂혀있는 걸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묘역을 걷다보면 비에 젖어 눈물처럼 번진 아내의 편지가 조각조각 해져 풀잎에 묻어있다. 풀잎에 맺힌 종이에 써 있는 '사랑한다'는 못다한 말은 남편에게 전해졌을까. 금박 글씨가 새겨진 청첩장을 보니 아버지의 빈 자리를 보며 절을 올려야 하는 아들의 모습이 떠올라 그리움에 물든 가을 단풍처럼 빨갛게 가슴이 타 들어갔다.
사연 없는 무덤이 어디 있으랴마는 묘비 앞에 낙엽처럼 놓인 편지들을 보면 언제나 생을 돌아보게 된다. 빗물에 젖은 편지와 바람에 흩날리는 청첩장의 풍경이 안타까워 '하늘나라 우체통'이 개설 된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간다. 못 다한 말들이 가슴 아픈 사연을 담아 전국에서 편지와 엽서로 몰려왔고 칭찬글이 신문에 게재되었으며 감사편지들도 날아왔다.
20여 년 동안 대전현충원 민원안내실에 보관된 편지들이 약 1000여 통이었는데 개설된 지 1개월 만에 약 700여 통이 하늘나라 우체통에 쌓였다. 그동안 가슴 속에 쌓아만 두었던, 까만 밤하늘에 별들만큼 많은 사연들이 쏟아져 하늘나라 우체통에 담긴 것 같았다.
그 중 제2연평해전 10주기 추도식 후, 하늘나라우체통에 담긴 사연 하나를 소개해 볼까한다. 편지 쓴 이는 21살 여대생 김양희 씨로 여섯 전사자 묘소에서 편지글을 읽었다.
윤영하 소령 묘소에서 “윤 소령님의 드넓은 바다위에서 열심히 나라를 지키시겠다는 다짐을 하신 뉴스를 보았는데 북한의 도발로 윤 소령님의 전사소식에 마음이 아팠습니다”며 “우리의 사소한 일상 그리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해주시는 군인 아저씨들이 계시구나하는 생각에 감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또 다른 가족으로서 응원하며 기억하고 당신들을 위해 열심히 살겠다고 했다. 유족들은 오열했고 여대생을 포옹하며 고마워했다. 김양희 씨는 너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하다며 당연히 할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사연은 종이로만 전달되지는 않는다.
대전현충원 홈페이지 '추모의 편지' 코너에 보면 눈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정의 글들이 세월 따라 쌓여가고 있다.
산 자와 죽은 자로 밖에 만날 수 없는 삶의 공간에서 온라인으로 날아오는 아들에 대한 모정을 볼 때면 자식의 부재가 주는 슬픔이 아들을 만나고픈 마음에 죽음을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것을 느꼈다.
“천 번씩, 만 번씩 수없이 부르고 불러도 그리운 아들아. 너의 음성 목소리 하나하나가 그리워 어미는 운다. 귓가에 맴도는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 오늘도 운다. 햇살 속에 네가 있고, 흐린 구름 속에 네가 있으며, 지는 석양의 그림 속에 네가 있다. 밤에 뜨는 별 빛 속에도 너의 모습이 있단다. 눈을 들어 둘 곳이 없구나. 어미는 숨을 쉼이 고통스럽다. 너 없는 사계절이 너무 춥다.”
국민들은 호국보훈의 달 뿐만 아니라 연중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분들이 누구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아들을, 아빠를, 남편을, 삼촌을, 할아버지를 잃은 유족들 비바람 속에도 눈보라 속에도 찾아와 비석 옆에 한 송이 국화처럼 고개 숙여 흐느껴 울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언제든 그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유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엽서에 담아 서쪽 하늘에 살고 계신 분들에게 전해지도록 하늘나라 우체통에 넣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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