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희 학부모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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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교육지원청 주관으로 학부모 카운슬러 교육과정에 참여하게 됐다. 내 자녀와의 갈등을 해결해 보려 시작했던 교육이 나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까지 찾아준 교육이다.
소외된 많은 가정 중에 조손가정을 선택해 학부모 리더들이 찾아가기로 한 이유는 조손가정이 복지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설레고 두려운 마음으로 처음 할아버지 댁을 찾았을 때, 생각보다 잘 정리된 집안모습과 반갑게 맞아주는 조부모 덕분에 순조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마치 정겨운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았기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말로 어떻게 시작 해야 할지 쭈뼛거리는 우리에게 오히려 손을 내밀어 반갑게 맞아주고, 먼 걸음 하느라 고생했다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더욱 숙연해지기도 했다.
“할아버지, 어떤 거 도와드리면 제일 좋겠어요?”
“아무 도움 필요 없어. 그냥 괜찮아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집을 나가 소식이 없는 아들과 손자들을 홀로 돌볼 수밖에 없는 상황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젊은 우리가 내 자식 키우기도 어려운데, 경제적ㆍ육체적으로 한계에 있는 고령의 할아버지가 청소년기에 접어든 손자를 홀로 돌보는데 어찌 어려움이 없었을까.
“우리 손자는 절대 엄마, 아빠 이야기는 입 밖에도 안내놔.”
아무리 보고 싶고 그리워도 조손가정의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마음에만 담아두어야 하는 존재다.
조손가정의 힘든 삶의 무게는 희망 잃은 무기력함을 주어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할아버지가 홀로 손자를 키우며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 할 때, 우리 상담자들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무기력함을 느낀다.
상담봉사자들도 어려움을 느낄 때 마다 월 2회 슈퍼비전(supervision)으로 상담의 지속성과 올바른 방향성을 잡아가고 있다. 이를 통해 조손가정의 아픔과 어려움을 다양한 형태(저항, 무기력, 전이)로 함께 가슴 깊이 느끼면서 조부모들이 살아갈 희망을 재발견하고 회복하도록 돕고 있다.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다음 주에 또 찾아 뵐게요.”
현관까지 나와 배웅하며 우리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잘 가라며 손짓하시는 할아버지를 두고 돌아서는데 가슴이 먹먹하다. 내 부모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면서 눈물이 왈콱 쏟아질 뻔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냥 듣는 일이다. 하지만, 잘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됐다. 쉽지는 않지만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 손자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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