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의 뽀빠이 청장 “나의 힘은 목표설정에서…”

집념의 뽀빠이 청장 “나의 힘은 목표설정에서…”

고교때까지 꼴찌하며 방황…뒤늦게 목표가 생기니 앞만보고 학업에 매진 업무 추진에서도 'To the point' 목표대로 곧장 향해야 하죠

  • 승인 2012-07-10 15:41
  • 신문게재 2012-07-11 11면
  • 대담=백운석 경제부장(부국장)ㆍ정리=이경태 기자대담=백운석 경제부장(부국장)ㆍ정리=이경태 기자
[중도초대석]박광열 대전국토관리청장

▲ 지난 2일 취임한 신임 박광열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은 집념의 인생사를 소개하며 새롭게 맡게 된 지역 개발사업에 대한 새로운 목표를 설정, 직관력을 살린 운영을 다짐했다.
<br />김상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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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취임한 신임 박광열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은 집념의 인생사를 소개하며 새롭게 맡게 된 지역 개발사업에 대한 새로운 목표를 설정, 직관력을 살린 운영을 다짐했다.
김상구 부장
지난 2일 취임식과 함께 업무를 시작한 신임 박광열(48)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 그의 인생은 집념 그 자체다. 넉넉지않은 가정형편 속에서 행정고시에 합격한뒤 해운항만청에서 출발한 박 청장은 국토해양부에 이르기까지 22년간의 공직생활 대부분을 집단민원 관련 부서에서 근무했다.

지역에서는 2007년 12월 발생한 태안 유류사고 현장에서 피해 지역민들의 보상업무 등을 2년간 맡기도 했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할때마다 특유의 낙관적인 성격으로 헤쳐나갔다. 왜소한 체격이지만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은 그는 이젠 비만 체형이 아닌, 몸짱(?) 체형으로 탈바꿈했다.

신임 박광열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은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그래서 직원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때론 상사와 때론 부하와 상충될 때도 있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젠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의 수장이 됐다. 대전, 충남ㆍ북지역의 도로, 하천, 산업단지 기반 공사 등 대규모 사업을 추진해야 할 수장으로서 그의 어깨는 무겁다. 집념의 사나이 '뽀빠이'박광열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을 지난 10일 만나 그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 취임을 축하합니다. 대전에서 근무하시게 된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공무원이 돼 기관장으로 대전에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대전에 처음으로 와서 이제 1주일 가량을 보냈지만, 객지에 온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네요. 그렇게 멀리 나온 것 같은 느낌이 전혀 안 들어요. 먼저, 교통이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KTX나 시외버스 노선이 잘 구축돼 오히려 서울에 있는 집에서 출ㆍ퇴근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또 대전도 광역시이기 때문에 도시 인프라가 잘 갖춰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건물 외연을 보게 되면 수도권과 전혀 다르지 않아서 오히려 친근한 것 같아요.”

2일 취임과 함께 업무를 파악하랴, 기관 인사를 다니랴 하루가 짧은 박광열 청장의 눈에 비친 대전은 객지라는 생각보다는 왠지 고향같이 느낄정도로 포근하다. 박 청장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도심 속의 녹지. 여기에 대전을 보호하듯 둘러싼 산세는 등산을 좋아하는 박 청장에게 살맛나는 도시로 각인됐다.

-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조그마한 사업을 하셨는데 어렴풋이 생각나는데 사업이 그리 번창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생각돼요. 누나 2명에 남동생이 2명인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죠. 어려서 아버지가 사업지를 수원으로 옮기는 바람에 가족 모두가 고향을 떠나게 됐습니다. 그 때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을 겁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꽤 좋으셨습니다. 하지만 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생각이 지금에 와서 드네요.”

수원으로 이사를 오게 된 박 청장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 졸업에 이르기까지 수원을 떠나지 않았다. 지동초에서 6학년 2학기를 마친 그는 수성중, 미션스쿨인 유신고, 경기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공부하고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중ㆍ고등학교 재학시절에는 미술에 매료돼 미술부로 활동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유도를 배우면서 공부와는 그만큼 거리가 멀어졌다. 결과는 뻔했다. 60명 가운데 55등으로 학급 내에서 거의 꼴찌 수준이었다. 학교성적 15등급 가운데 12등급 정도였다. 학창시절 박 청장의 성적이 저조했던 데는 그 만의 이유가 있었다. 그는 공부하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확실한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고 방황해서다.

자신만의 목표를 찾지 못했던 박 청장이 공부를 시작하게 된 데는 대학 입학 전형에서 성적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재수한 박 청장은 '와신상담' 끝에 경기대학교 행정학과를 시험봐 합격했다. 고등학교 시절 매번 성적이 부진했던 박 청장이 어엿한 대학생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재수기간 동안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서 남다른 집중력으로 학업에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집념이 발휘됐던 순간이었다.

- 행정고시라는 관문을 통과하면서 공직에 입문하게 됐는데 그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대학에 입학해 행정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입학을 해 행정학을 배우며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당시 공무원에 대한 기대가 커졌지요. 공직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공무원이 정직하게 입문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행정고시 시험을 치르게 됐는데, 첫 시험에서 안타깝게 몇 문제 차이로 낙방하게 돼 오기가 생겼습니다. 지도교수님도 힘을 보태주셨답니다.”

하지만, 박 청장이 행정고시를 쉽게 통과한 것은 아니다. 6년여에 걸친 고시 준비동안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영어였다. 3년가량을 영어과목 점수를 올리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해 어쩌면 고시 공부의 반은 영어공부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집념이 하늘을 감동케 한 것일까? 그는 1990년 제34회 행정고시에 응시해 당당히 합격통지서를 받아들었고, 이듬해인 1991년 그의 공직생활은 시작됐다.

- 공직생활 동안 어려운 일도 도맡아 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집단 민원성 업무가 그리 쉬운 업무는 아닐 텐데요.
“1991년 임관과 동시에 해운항만청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풍운의 꿈을 안고 공무원으로서 업무를 시작한 뒤 해운항만청, 해운수산부, 국토해양부 등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구조개편에 의해 3개 조직에서 모두 근무를 하게 됐지요. 그런 가운데 집단민원성 업무를 연이어 맡아 맘 고생도 많았답니다.”

그는 해운항만청 근무 시 원양어업 선원 및 노조, 가족에 대한 집단민원성 업무를 담당했다. 해운수산부 근무시절에도 시화호와 관련된 소형어선 집단 분쟁은 물론, 광양만 남해군의 집단민원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근무해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국토해양부로 부임한 뒤 2007년 12월에는 충남 태안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해 현장지원 및 보상지원 업무를 2년 가깝도록 수행했다. 당시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는데 박 청장은 이들에 대한 적정한 피해보상이 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업무를 통해 지원했다.

박 청장은 “어쩌면 남들이 꺼릴 수밖에 없는 업무를 많이 맡았던 것 같다”며 “피해를 입은 지역민들에 대한 보상이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어서 안타깝기만 할 뿐”이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 집에서는 '애처가'라고 들었습니다. 부인과는 어떻게 만나셨고,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아내와의 만남은 대학교 3학년 때 미팅을 통해서였답니다. 당시에 친구 중 한 명이 여름성경학교에 다녔는데 그곳에서 알게 된 여학생과 또래 남자친구들이 4대 4 미팅을 했습니다. 그 때 아내를 만나 교제를 하게 됐지요. 두 살 연하인 아내는 미팅 당시 인천교대 4학년생이었는데 그 후 졸업과 동시에 초등학교에 부임하게 됐는데 저는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나중에 들은 얘긴데요. 아이들 엄마와 연애시절 여자친구들이 '광열씨 가진 것도 없지, 체구도 작지, 지방대 다니지 고시에 합격이나 하겠어.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일찍 헤어지는 게 낫지않겠느냐'는 조언을 여러차례 했던 사실을 뒤늦게 알았죠”라며 박 청장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박 청장의 한결같은 마음 씀씀이와 믿음직한 태도 덕분에 첫 미팅의 인연이 결국 반려자가 될 수 있었다. 그는 결혼 후 부인과 싸움 한번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싸움의 원인을 자신이 만들어 내기 때문에 스스로 싸울 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됐기 때문이란다. 부인 역시 오랫동안 쌓아두는 것을 싫어해 서운한 점이 있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풀어지는 등 싸움이 싫어 노력하는 '부창부수'의 모습이 부러울 정도다.

하지만, 부인이 딸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지 말라며 신신당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박 청장은 “엄마로서 딸에 대한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랬을 것이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 평소 건강을 챙기기 위해 다이어트에 운동까지 열심히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특별한 계기라도 있으셨는지요.

“지금은 체구가 외소하고 말랐지만 5년전까지만 하더라도 160㎝인 제가 73㎏까지 나갈 정도로 살이 쪘었죠. 활동하는 게 다 불편했어요. 여기에 아내의 말이 또 명언이었죠. '공직 생활을 오래 하려면 재테크를 해서 돈을 불릴 생각하지 말고 건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라는 말이 계기가 됐습니다.”

비만 체형이었던 그는 굳은 결심과 함께 2007년께부터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그의 다이어트 원칙은 간단했다. '덜 먹기와 많이 움직이기'다.

사실 그의 다이어트 비결은 지속적인 걷기 운동 덕택이었다. 식사도 반으로 줄였다. 그 결과 14㎏나 줄였다. 몸이 가벼워지자 박 청장은 “자신감부터 생겼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체중을 줄인 뒤부터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근육을 키웠다. 갑자기 박 청장은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상반신을 드러낸 자신의 근육질 몸매 사진을 보여줬다. 요즘 말하는 초콜릿 복근이 뚜렷하게 나타난 몸짱(?)이었다. 그는 한번 팔굽혀펴기를 시작하면 연속으로 100~150회는 가뿐히 할 정도로 근력도 늘었다고 말했다.

-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을 이끌어가는 수장으로서 책임도 막중한데요. 각오 한 말씀해 주시죠.

“저는 평상시 말이 많습니다. 직원들에게 의미를 충분히 전달해 이해시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제가 원하는 말만 하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을 줄이고 많이 듣는 경우도 많지요. 공무원의 자리에 있으면 다양한 업무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게 돼 많은 정보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듣고자 한다면 고급 정보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듣게 되는 데, 이렇게 귀 기울여 들은 정보를 토대로 업무에 반영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는 20여년간의 공직생활을 하면서 때론 유혹을 받기도 했다. 유혹에 대해 박 청장은 외부적인 요인과 해당 업무 처리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에 맞춘 결정도 포함시켰다. 그는 그럴 때마다 자신만의 직관을 믿었다고 말했다. 업무를 수행할 때 박 청장은 복잡한 스타일보다는 목표로 곧장 향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투 더 포인트(To the Point)'라는 것. 그는 또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을 이끌어가는 수장으로서 틀에 박힌 체제를 지양할 생각이다. 정형화된 방식에 얽매이다보면 열린 생각을 할 수 없을 뿐더러, 직원과의 소통에서도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주량이 소주 한병정도라는 박 청장은 “골프는 아직 배우지 못했다”면서 “운동도 구기종목보다는 투기종목을 좋아한다”고 했다.

박광열 청장은 “공직사회에서 무조건 자유분방하게 업무를 볼 수는 없겠지만, 열린 생각ㆍ열린 자세로 많이 듣고, 신중히 판단하려고 한다”며 “대전, 충남ㆍ북 개발의 기본이 되는 사업을 비롯해 4대강 등 기존 사업과 연계된 지천 사업 등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수행할 계획”이라며 말을 끝맺었다.

대담=백운석 경제부장(부국장)ㆍ정리=이경태 기자

●박광열 청장은 누구?

▲1963년 2월 부산시 남구 문현동 출생
▲수원 유신고 졸업, 경기대 행정학과 졸업, 웨일즈대학 해양정책 석사, 웨일즈대학 국제교통학 수료
▲해운항만청, 해수부 기획예산담당관실, 해양환경과장, 유통가공과장, 중국 대사관 해양관, 국토해양부 해양정책팀장, 해양개발팀장, 해양환경정책과장, 자동차정책과장, 해양환경정책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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