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 대전대 한의과대학 둔산한방병원 교수 |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1위에 선정되었던 루앙프라방. 그곳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풍경화 같은 도시다. 2007년 7월. 23명의 의료팀 일행이 도착한 루앙프라방은 60년대 혹은 70년대 우리네 시골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고즈넉하고 소박한 모습 그대로다. 공항에는 방금 착륙한 비행기 한 대 외에 보이는 것이 없다. 공항 밖으로 빠져나오자 곧바로 비포장 도로의 연속이다. 임시 막사와 황토집과 간혹 보이는 가게들이 가지런히 도로의 양옆에 늘어서 있어 우리의 눈을 추억에 잠기게 한다. 3층 크기의 허름한 고급호텔(?)의 건물 안과 밖으로 수도 없이 보이는 도마뱀 또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진료를 위해 건너는 누런 황톳빛 메콩강은 방송에서만 만날 수 있는 원시의 풍경으로 가득하다. 쫌펫이라는 곳은 작은 마을이다. 그곳의 군 보건소는 충격 그 자체다. 다 부서져가는 몇 개의 침상이 뒤죽박죽 놓여 있는 그곳이 병실이란다. 분만실은 더 가관이다. 어디서 왔는지 순식간에 600명이 모여들었다. 진료소를 찾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한 번도 의사를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통역을 맡은 스파노방 대학의 한국어반 학생들이 귀띔을 한다. 이곳에 오기 위해 작게는 두 세 시간, 많게는 열 시간 이상을 걸어서 왔다고 한다. 심지어 막내 동생을 업고, 네 살 동생을 손에 잡고 진료를 받으러 왔던 10살 꼬마도 있었다. 몇 년전에 찍은 X-레이 필름 한 장을 들고 와서 자랑하듯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다. 안경을 낀 사람은 부자란다. 그들의 눈빛은 흡사 '봐라, 난 이런 사람이야'를 외치는 듯. 이곳은 무더운 날씨 뿐 아니라 자외선이 아주 강렬하여 안과질환, 피부 질환, 그리고 기생충 질환이 많단다. 우리가 준비해간 피부 연고와 기생충 약은 이곳에서 최고의 인기 품목이다.
진료를 기다리는 그들의 눈빛, 진료를 마치며 행복에 겨워하는 얼굴, 한번 투약으로도 평생 병에 걸리지 않는 만병 통치약을 받은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행복을 몰래 훔쳐온다.
진료를 시작한 첫날. 우리 팀은 함께 진료를 하기로 한 라오스 현직 의사를 메콩강가에서 한 시간 가량을 기다렸다. 진료소에서도 한참을 기다리고야 담당간호사와 직원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런일이 당연하단다. 코리안 타임보다 훨씬 심하다. 조그만 진료소에 40명의 공무원이 근무한단다. 그런데 실제 보이는 인원은 10여명 내외다. 더군다나 4시가 되려면 한참이 남았는데도 그들은 벌써 퇴근준비를 시작한다.
진료 마지막 날은 참 이상하다. 5시가 다 됐는데도 그들은 퇴근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져간 약 중 고가약인 혈압약, 당뇨약을 달라고 떼를 쓴다. 팔아서 뒷돈을 챙기려는 속셈이란다. 그렇다. 호텔에서 약품 검수 차 나온 공무원이 한참동안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거드름을 피웠던 생각이 난다. 선물과 돈을 주고 나서야 약품검수를 마쳤던 씁쓸한 기억이 번뜩 뇌리를 스쳐갔다.
앉아서 악수를 청하는 거만한 모습의 주지사며, 복지 담당 국장은 진료에 남은 약제를 주립병원에 기증하고 온 것에 울분을 토한다. 심지어 본인에게 일부를 주지 않으면 라오스에 발을 못붙이게 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한다. 남은 약을 본인에게 주면 더 골고루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고 장담을 한다. 주정부 건물을 빠져 나오며 느끼는 그 찝찝한 느낌은 무얼까?
라오스를 떠나며 나는 기도했다. 라오스의 정치가와 공무원들이 최빈국의 오명을 벗기위해 국민들의 해맑은 눈빛을 조금만이라도 기억해주기를.
최근 전현직 대통령의 측근 비리에 대한 내용을 접하며 부끄럼을 금할 수 없다.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돈만 챙기려는 우리네 정치인의 모습이 흡사 라오스의 그들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내나라 내 정치인, 경제인, 우리네 공무원들이 조금만 더 깨끗하고, 서민들을 조금만 더 헤아려 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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