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늑장대응에 사라진 증거물

천안 '퍽치기' 사건 단순폭력 치부… 폐쇄회로 기록 삭제돼

최근 경찰이 강력사건을 단순폭력사건으로 오인해 늑장대응을 하다가 유일한 증거물인 폐쇄회로 기록마저 삭제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피해자 C(26)씨에 따르면 지난달 6일 오전 5시 35분께 천안시 두정동의 한 주차장에서 남자 2~3명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뒤 지갑과 휴대폰 등을 강탈당한 일명 '퍽치기' 사건이 발생했다.

뇌진탕으로 쓰러진 C씨는 지나가던 행인의 신고로 119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오른쪽 무릎 인대 손상과 허리 골절 등 전치 5주의 중상을 입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C씨는 같은 달 8일 사건발생 인근 지구대에 신고하려 했지만 당시 상황과 장소 등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자 경찰은 단순폭력으로 오인, 자술서만 받고 되돌려 보냈다.

억울하게 생각한 C씨는 같은 달 11일 자신의 강도피해에 대해 재차 진술하기 위해 지구대를 찾았지만, 담당경찰관이 비번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당시 C씨는 경찰관에게 폐쇄회로 삭제를 우려하자 경찰은 오히려 담당경찰관이 오면 말할 것을 주문했다. 게다가 C씨는 119구급대원이 잘못 기록한 사건발생장소 160X-X 번지가 아닌 실제 106X-X 번지임을 밝혀내고 알리려 했지만 경찰은 이마저 “담당에게 얘기하라”고 묵살했다.

결국, 사건발생 8일 만인 같은 달 13일 C씨가 지구대에서 피해진술을 하자 경찰은 그제야 강력사건임을 파악해 본서에 보고했다.

문제는 사건발생장소 인근에 폐쇄회로 3대가 설치돼 있음에도 저장기간이 5일간밖에 되지 않아 유일한 증거물인 기록이 이미 삭제된 상태였다.

C씨는 “지난 달 8일 뇌진탕 등으로 정신이 혼미한 나를 대신해 경찰이 직접 119구급대에 연락해 사건발생장소를 물어봤더라도 폐쇄회로 기록 확보가 됐을 것”이라며“경찰은 중상을 입은 피해자가 직접 구급대와 병원에 연락해 조사토록하고 잘못된 사건발생장소를 다시 알려주려했지만 이를 거부까지 했다”고 억울해했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 신고할 때 C씨가 정확한 사건발생장소도 기억하지 못하고 폭행을 당했다고만해 단순폭력으로 처리했다”며 “하지만, 피해자 진술 후 강력사건임을 알고 본서에서 수사토록 조치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은 C씨의 퍽치기 사건에 대해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천안=김한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