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기대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
한국인의 여가 시간과 삶의 수준 향상은 21세기 가장 큰 '문화혁명'이다. 그래서 더 놀고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있어야 하고, 사람들이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1960~70년대를 살아온 분들은 경제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많아 문화를 얘기하면 여전히 먼 나라 얘기다. 필자처럼 1980년대 대학을 다녔던 '486세대'는 군사 독재정권과 맞물려 있어 행복과 재미를 따라 다닌 사람들은 좋지 않은 시선이 따라 다녔다. 그런데 이들이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가는 기성세대들이다. 그들은 분명 근면하고 성실하게, 때로는 사회적 불의에 저항하며 싸운 한 국가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자식 잘 해먹이고 가르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기에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진정 행복해할까.
필자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은 놀 줄, 아니 더 구체적으로 문화를 갖고 놀 줄 모른다. 필자 또한 문화를 갖고 논다는 생각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유럽에서의 유학 생활이 문화에 대해 한국과는 완전 다른 생각을 갖게 했지만, 그것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흔히 21세기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내재되어 있는 '근대성'(modernism)과의 대면, 신종플루보다 더 무서운 '레드콤플렉스'에 대한 이해, 무엇보다 내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는 충돌을 반복케 한 '내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를 갖게 되면서 진행되었다.
놀 줄 모르는 인간을 걱정했던 인물이 있다. 요한 하위징아(1872~1945)인데, 그는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것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의 충동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한다. '호모 루덴스'는 놀이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 놀이는 '내적 동기',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행동을 유발한다. 그래서 '내적 동기'에 의한 놀이는 가장 만족스럽고 재미있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그들은 항상 즐겁게 노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운데 웬 노는 타령이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경제를 살리기 위해 4대강 사업을 해야 한다는데 수긍하는 국민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21세기 국가 경쟁력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 그저 경제가 어려우면 불안할 뿐이다. 그러니 문화를 통해 즐기고 놀고 할 겨를이 없고, 기껏해야 남을 의식한 사교적 형식의 문화예술을 즐길 뿐이다. 필자 같은 486세대 또한 놀아본 바가 없다. 오로지 사회정의와 독재 타도를 부르짖던 그들은 여전히 당시의 가치관을 갖고 소리칠 뿐 전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라.
그런데 우리 대전에서 정말 잘 노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 그들이야말로 미래 대전의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갈 중요한 자원들이다. 그들은 산업화사회의 문화가 아니라 지식정보화사회에서 문화를 즐길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개개의 분자들로, 모두 각기 움직이며, 사안에 따라 수많은 '접속'과 '배치'를 이루어가고 대전의 새로운 문화적 지평을 확장해가고 있다. 그 지역 상권도 덩달아 활성화되고 있다. 그들을 보노라면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에서 문화를갖고 어떻게 놀아야 할지 주목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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