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2주기 13차 대전산내학살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27일 오후 서대전 시민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열려 마당극단이 위령공연을 펼치고 있다. 손인중 기자 dlswnd98@ |
27일 서대전시민공원에는 흰 저고리와 삼베옷을 입은 70~80대의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들은 62년전 한국전쟁 발발을 전후해 대전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군경에 의해 산내 골령골에서 집단 학살된 재소자와 보도연맹원·예비검속자들의 유족이다. 이날 서대전시민공원에서는 산내학살 사건 제62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에 대한 13번째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공원 내 마련된 위령제단에는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513명의 위패와 그들의 넋을 위로할 술이 놓였고, 그리움에 사무친 유족들의 숨죽인 흐느낌으로 가득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위령제에 참석한 배중목(81·대덕구 동면)씨는 그날의 사건으로 형을 잃었다.
배씨의 형은 당시 인민군에게 협력했다는 이유로 군인들에게 끌려간 뒤 돌아오지 못했다.
뒤늦게 형이 죽었다는 소식에 배씨는 몰래 그 현장을 찾았다가 구덩이에 참혹하게 뒹구는 시신들을 목격했다고 한다.
배씨는 “어디에 억울하다 하소연 할 데가 없었다”며 “모두가 진실을 알려고도 하지않고 빨갱이라고 손가락질만 했다”고 말했다.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들은 억울하게 먼저간 가족 생각이 난듯 연신 손수건으로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신순란(77·공주)씨는 산내학살사건으로 13살 터울의 큰 오빠 신석호(당시 26세)씨를 잃었다. 야학교사였던 신씨의 오빠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끌려갔다.
하지만 경찰들은 무엇이 국가보안법 위반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후 신씨의 집 앞에서는 항상 감시원들이 가족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봤고 때때로 신씨 가족들을 한명씩 데려가 고문을 가했다.
신씨는 “매일 두 세 시간 씩 가족들이 한 두명씩 사라졌다가 나타났다”며 “나도 끌려가서야 가족들이 모두 끌려가 조사받고 나온 것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조사받은 사실을 유포하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말에 모두가 조용히 저녁만 먹고 방으로 헤어졌다”며 “어린 나이에 정말 끔찍했던 기억이었다”고 말했다.
전숙자(65·부여)씨의 부친은 월북한 삼촌을 도왔다는 혐의로 경찰에 끌려갔다가 희생됐다. 부친이 비명횡사 한 뒤 전씨의 어머니도 우울증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고, 그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전씨는 “아버지는 삼촌이 뭘 했는지도 몰랐다”며 “아버지가 끌려간 뒤 동네에선 '빨갱이'의 자식으로 손가락질 당하고 외면받았다”고 말했다.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 온 유족들의 마지막 바람은 희생자들의 유골이라도 제대로 수습됐으면 하는 것이다.
2010년 7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집단 희생 사실을 인정하면서 산내학살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여전히 다수 희생자들의 유해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김종현 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회장은 “2년전 국가에 의한 명백한 잘못이라고 밝혀졌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며 “여전히 빨갱이라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골령골에서 7000여명이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 513명의 신원만 확인됐을 뿐”이라며 “국가가 책임지고 조사해야될 일”이라고 호소했다.
강우성 기자 khaih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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