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재권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장 |
“금융이란 기본적으로 비 올 때 우산을 빌려주는 것과 같은 데 은행들은 조금만 사정이 어려워지면 남들보다 먼저 자금을 회수하려 한다. 정작 비올 때 우산을 뺏는 격인데, 서민금융기관들은 은행보다 천천히 우산을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 고객의 신용상태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건당 대출취급 규모도 충청권의 경우 담보대출은 3억원 이내, 신용대출은 1000만원을 넘어서는 안 된다. 전체 자산규모도 5000억원 이상으로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법에 규정된 대로, 당국에서 제시하는 규정대로만 하면 쉽게 망하지 않는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금융업은 수신확보가 문제였지만, 지금은 여신이 관건이다. 만성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수신만 되면 여신은 자동으로 해결되지만, 지금은 대출해 줄 대상만 있으면 자금은 쉽게 조달된다. 즉 우량 대출선 확보가 가장 중요한 과제고, 담당자가 남의 돈이 아닌 자기 돈을 빌려 준다는 생각으로 조건을 따지고 또 따진다면 부적격자에게 퍼주는 대출은 발생하지 않는다. 담보가액에 대한 평가도 외부기관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보다는 여건 악화시 현실적으로 회수 가능한 규모를 자체적으로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다.”
특히 대화 말미에 들은 “저축은행은 서민금융기관이라는 설립취지에 부합되게 운용되어야 하고, CEO를 포함한 금융인들이 스스로 자기 회사의 재무제표 내용을 믿을 수 있어야 금융기관의 공신력이 확보된다”는 이야기는 돌아오는 길에 필자의 귓전에 계속 맴돌았다.
예전 상호신용금고시절부터 서민금융을 취급하고 충청은행의 설립부터 1998년 영업정지를 당하는 상황까지 지켜보면서 체득한 서민금융의 기본 핵심을 증언해 준 듯했다. 이제까지 말로만 들었던 '지역밀착형 경영', 서민금융기관에게 필수적인 '관계금융(relationship banking)'이 어떤 형태로 전개되어야 하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간 금융에 대한 이론적 연구가 대부분 대형화 및 국제화의 필요성, 체계적 위험관리 위주로 전개되어 왔다. 더욱이 서민금융에 관해서는 대부분 원론적이어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과 처방이 다분히 제각각이어서 상당히 혼란스럽다. 오히려 현장에서 느낀 기본 원칙들이 가장 정확한 진단이고 소중한 처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대로 된 서민금융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우리 사회의 인식 및 분위기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예금자는 서민금융기관이 은행보다 여러 면에서 취약하다는 점을 잊지 말고, 여유 돈이 아닌 생활자금은 금리가 좀 낮더라도 안전한 금융기관에 맡겨야 한다.
둘째, 서민금융기관은 자신들의 본분에 걸맞게 서민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형화를 도모할 필요성이 있겠지만, 대형화할수록 그만큼 투자손실 가능성이 커지고 도산 위험도 커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적어도 서민금융기관은 서민의 소중한 돈을 운용한다는 사명감을 잊지 말고 자산규모를 지나치게 키우기 보다는 지역실정에 맞는 안정적인 자산 운용에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셋째, 외국의 경우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은 고객과의 밀접한 관계 유지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관계금융을 근간으로 영업하고 있으므로, 우리 지역의 서민금융기관들도 관계금융 강화를 통한 영업행태 개선에 보다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 지역은 지난해 대전저축은행 영업정지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3차로 영업정지된 4개 저축은행중 2개 저축은행이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30년 이상 서민금융을 영위해 온 어느 경영인의 바람처럼 서민금융이 제대로 이루어져 더 이상 선량한 서민들의 피해가 재연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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